iOS 지원, 리퍼 등 가격 방어 요건 갖춰져
얼마 전 새 스마트폰을 개통하기 위해 방문한 이동통신 대리점. 새 제품을 구입하기에 앞서 사용하던 제품을 처분해달라는 요구에 매장 관계자가 위로하듯 던진 말이었다.
개통 절차가 끝나기 전 중고거래 업자가 대리점에 도착했다. 그는 기자의 휴대폰을 쓱 훑어보더니 "오늘 시세가 20만원이네요. 그래도 깨끗하게 사용하셔서 4만원 더 쳐드리는겁니다"라며 선심 쓰듯 가격을 매겼다.
한때 '플래그십'이라 불렸던, 1년여 밖에 안 쓰고 흠집하나 없었던 스마트폰이었다. 살 때 가격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가격표를 달고 그렇게 중고 제품이 됐다.
◆아이폰, 독보적 가격방어…단통법 후에도 여전히 고가 거래
국내 중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은 독보적인 가격 방어력을 보여주고 있다. 더 높은 출고가와 사양을 가진 국산 중고 제품보다 오히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아이폰8' 출시가 임박한 가운데 '구형'이 될 운명인 '아이폰7'의 시세는 어떨까? 내장 메모리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여전히 중고거래사이트에서 6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아이폰7의 전 모델인 아이폰6S는 16G 기준 30만~40만원대에 팔린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5가 20만원대에 팔리는 것과 비교하면 최대 두 배까지 차이가 난다. 직거래가 아닌 휴대폰 유통점을 통해 판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문업체가 매입하는터라 직거래보다 중고가격은 다소 떨어지지만, 아이폰과 국내 스마트폰들의 차이는 그대로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되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국내 중고 제품들의 가격 방어가 수월해질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줄어든 보조금도 국내 중고 제품들의 헐값 거래를 막지 못했고 아이폰은 여전히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아이폰의 중고시장에서 이처럼 대접을 받는 이유는 4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프리미엄 이미지 정착 ▲전세계 단일화 모델 ▲리퍼제도 ▲최신 운영체재 지원 등이다.
◆고가전략에 '프리미엄' 이미지 각인…전세계 단일화 모델
아이폰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프리미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때문에 '비싼 제품'이라는 인식이 덤으로 따라왔다. 실제로 애플은 아이폰 출시 초기부터 고가 전략을 구사해왔다. 최근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중저가 모델도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력은 고가모델이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아이폰 구매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비싼 가격'이 꼽힌걸 감안하면, 애플의 고가 전략은 성공했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다.
아이폰의 고가 이미지는 국내 중고 시세에 그대로 반영됐다. 한 유통점 관계자는 "국내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아이폰 중고 제품의 수요가 많아 시세가 안정적이다"며 "국내 아이폰 중고가격은 글로벌 시세에 중고업자들의 마진이 더해지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아이폰은 전 세계에서 단일 모델로 출시된다는 점도 중고시장에서의 인기요인이다. 중고 제품을 수출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국산 스마트폰들이 국내용과 수출용을 따로 생산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아이폰은 중국에서 꾸준한 인기제품이다. 최근 중국에서 아이폰의 인기가 예전같진 않지만 여전히 선호도는 높다. 100만원에 달하는 새 제품 대신 한국에서 수입되는 중고 아이폰을 찾는다는 얘기다. 중국은 한국과 통신 방식이 비슷해 국내 중고 아이폰을 중국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국내 중고 제품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된다.
◆중고도 새 것되는 '리퍼제도'…중고폰에도 최신 IOS 지원
애플은 삼성전자. LG전자와 달리 '리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당장 중고를 구매하더라도 서비스 기간이 남았다면 새 제품에 견줄만한 제품으로 리퍼받을 수 있다. 이는 아이폰을 구매하는 데 있어서 큰 장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이폰은 리퍼 제도를 통해 새 제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게 큰 메리트"라며 "실제로 보증기간이 남은 제품은 일반 제품보다 약 10만원 가량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애플이 기존에 출시된 아이폰에 최신 운영체제인 iOS를 제공하는 점도 중고폰의 가치를 높인다. 몇년이 지난 기기라도 용량만 있다면 최신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있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신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새 제품을 쓰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기기만 낡았을 뿐 구형과 신형의 경계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중고도 새것 같은 아이폰. 아이폰의 가격이 높게 형성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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