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유·이성 예찬한 19세기, 왜 전쟁에 불을 댕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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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조직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최파일 옮김 / 사회평론 / 744쪽 │ 3만원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최파일 옮김 / 사회평론 / 744쪽 │ 3만원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꼽힌다. 수학, 분석철학 등 전공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반전 평화주의의 기조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 실천적 지식인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자신의 전공은 물론 종교, 교육, 인생론, 문명론, 사회비평, 역사 등의 분야에서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최근 한국어 판으로 처음 나온 《자유와 조직(원제: Freedom and Organization)》은 국내 출간된 러셀의 저작 중 보기 드문 역사서다. 영국에서 원서가 출간된 해는 1934년.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운 시기였다. 반전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 러셀은 세계대전의 원인을 규명하고, 다가오는 전쟁을 경고하기 위해 ‘역사’를 선택했다.
러셀은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빈 회의가 열린 1814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유럽과 미국의 100년 역사를 서술한다. 그는 19세기를 자유와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출발했으나 세계대전이란 실패로 귀결된 아이러니의 시대로 설명한다. 이 역설을 풀기 위해 이 시대 변화의 두 요인으로 파악한 ‘자유’와 ‘조직’의 대립과 상호작용을 추적하며 19세기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시도한다.
러셀의 핵심 주장과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18세기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자유주의는 개인과 민족의 자유, 최소한의 정부를 옹호한다. 자유는 1814년 새로운 유럽을 형성한 보수주의적 빈 체제가 무너지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자유는 영국 공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자유’와 자본가들이 중시하는 ‘경제적 자유’로 분화했다. 미국에서도 두 가지 자유가 19세기 내내 대립했지만, 결국엔 경제적 자유로 무게중심이 쏠렸다. 자유주의의 기본 교리는 ‘민족성 원칙’이다. 민족주의는 모든 나라가 정당하든 정당하지 않든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결국 제국주의로 나아갔다.
19세기 산업기계, 철도, 전보, 출판 등 경제적 기술의 발달은 조직 역량을 촉진했고, 경제력과 정치력을 보유한 자들의 권력을 증대시켰다. 19세기 후반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 민족자결주의는 호전적 민족주의로 변모했다. 제국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정치 등 자유를 희생하며 등장한 조직이 우월하게 대두됐다. 산업의 조직화. 노동조직의 형성과 발전, 민족주의의 비등으로 국가적 차원의 조직화는 고도화했다. 그러나 국제적 차원의 조직화는 이에 발맞추기보다 거꾸로 흘러갔다. 국제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자유주의와 급진주의는 과학기술로 지배되는 세계에서 조직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19세기는 국제적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러셀은 1차 세계대전 이전 문명사회의 지배적 신조인 ‘국가 내 고도의 조직화와 국가 간 관계의 무제한적 자유’가 현재(1930년대) 한층 더 지배적 신조가 됐다고 설명한다. “1914년 전쟁을 낳은 동일한 원인들이 지금(1934년)도 작동하고 있다. 투자와 원자재의 국제적 통제로 저지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동일한 결과를 훨씬 더 큰 규모로 초래할 것이다. 문명사회 인류를 집단 자멸에서 구하는 길은 전 세계적인 경제 조직을 통해 가능하다.”
러셀의 비관적 예측은 5년 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현실이 됐다. 전후 세계는 ‘훨씬 더 큰 규모로 초래할’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유엔을 창설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최근 ‘스트롱맨 시대’를 맞아 러셀이 현대 세계의 지배적 힘으로 파악한 ‘경제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80여 년 전 러셀의 역사적 통찰에는 지금도 여전히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최근 한국어 판으로 처음 나온 《자유와 조직(원제: Freedom and Organization)》은 국내 출간된 러셀의 저작 중 보기 드문 역사서다. 영국에서 원서가 출간된 해는 1934년.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운 시기였다. 반전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 러셀은 세계대전의 원인을 규명하고, 다가오는 전쟁을 경고하기 위해 ‘역사’를 선택했다.
러셀은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빈 회의가 열린 1814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유럽과 미국의 100년 역사를 서술한다. 그는 19세기를 자유와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출발했으나 세계대전이란 실패로 귀결된 아이러니의 시대로 설명한다. 이 역설을 풀기 위해 이 시대 변화의 두 요인으로 파악한 ‘자유’와 ‘조직’의 대립과 상호작용을 추적하며 19세기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시도한다.
러셀의 핵심 주장과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18세기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자유주의는 개인과 민족의 자유, 최소한의 정부를 옹호한다. 자유는 1814년 새로운 유럽을 형성한 보수주의적 빈 체제가 무너지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자유는 영국 공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자유’와 자본가들이 중시하는 ‘경제적 자유’로 분화했다. 미국에서도 두 가지 자유가 19세기 내내 대립했지만, 결국엔 경제적 자유로 무게중심이 쏠렸다. 자유주의의 기본 교리는 ‘민족성 원칙’이다. 민족주의는 모든 나라가 정당하든 정당하지 않든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결국 제국주의로 나아갔다.
19세기 산업기계, 철도, 전보, 출판 등 경제적 기술의 발달은 조직 역량을 촉진했고, 경제력과 정치력을 보유한 자들의 권력을 증대시켰다. 19세기 후반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 민족자결주의는 호전적 민족주의로 변모했다. 제국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정치 등 자유를 희생하며 등장한 조직이 우월하게 대두됐다. 산업의 조직화. 노동조직의 형성과 발전, 민족주의의 비등으로 국가적 차원의 조직화는 고도화했다. 그러나 국제적 차원의 조직화는 이에 발맞추기보다 거꾸로 흘러갔다. 국제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자유주의와 급진주의는 과학기술로 지배되는 세계에서 조직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19세기는 국제적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러셀은 1차 세계대전 이전 문명사회의 지배적 신조인 ‘국가 내 고도의 조직화와 국가 간 관계의 무제한적 자유’가 현재(1930년대) 한층 더 지배적 신조가 됐다고 설명한다. “1914년 전쟁을 낳은 동일한 원인들이 지금(1934년)도 작동하고 있다. 투자와 원자재의 국제적 통제로 저지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동일한 결과를 훨씬 더 큰 규모로 초래할 것이다. 문명사회 인류를 집단 자멸에서 구하는 길은 전 세계적인 경제 조직을 통해 가능하다.”
러셀의 비관적 예측은 5년 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현실이 됐다. 전후 세계는 ‘훨씬 더 큰 규모로 초래할’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유엔을 창설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최근 ‘스트롱맨 시대’를 맞아 러셀이 현대 세계의 지배적 힘으로 파악한 ‘경제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80여 년 전 러셀의 역사적 통찰에는 지금도 여전히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