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2일 개봉하는 광주민주화항쟁 배경 영화 ‘택시운전사’ 중 한 장면.
다음달 2일 개봉하는 광주민주화항쟁 배경 영화 ‘택시운전사’ 중 한 장면.
송강호(50·사진)는 ‘시대의 얼굴’ 같은 배우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 ‘효자동 이발사’(2004), ‘변호인’(2013), ‘밀정’(2016) 등 한국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그는 혼돈의 시대에 놓인 인물을 연기했다. 이번엔 민주화 역사의 상처를 간직한 1980년 광주로 뛰어들었다. 다음달 2일 개봉하는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에서다. 송강호는 광주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온 독일 기자 피터를 태우고 광주까지 달린 서울 택시기사 만섭 역을 맡았다. 12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거절했습니다. 제가 과연 이런 이야기를 감당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의 메시지와 여운이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가고 자리를 잡아가더군요. 그렇게 마음의 준비가 돼 결국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만섭은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어린 딸을 혼자 키우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당시 인기가요인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따라부르며 어깨를 들썩이고, 시위하는 대학생을 향해선 “사우디에서 더운 모래바람 마셔가며 생고생을 해봐야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 줄 알지” 하며 혀를 끌끌 찬다.

밀린 월세 때문에 고민하던 그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운명처럼 찾아온다.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넉 달치 월세인 1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 만섭은 영문도 모른 채 독일 기자 피터를 태우고 길을 나섰다가 광주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는다.

“광주 시민과 군경이 대치한 금남로 장면에서 여러 번 울컥했습니다. 잔혹하고 잔인한 장면이죠. 희생당한 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진정성있게 영화에 담아 우리가 그들에게 진 마음의 빚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영화는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 항쟁 현장 영상을 찍어 세계에 알린 독일 방송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2003년 한국에서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으면서 “당시 나를 태워준 택시기사 김사복 씨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한 데서 출발했다. 힌츠페터의 회고와 광주 시민들의 증언에 영화적 인물과 설정이 곁들여져 작품이 완성됐다.

송강호의 연기력은 주인공 만섭이 광주에서 겪는 갈등과 동요, 결단의 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만섭은 폭력적인 광주의 두려움과 서울에 혼자 남아 있는 딸에 대한 걱정에 피터를 남겨둔 채 몰래 도망친다. 하지만 막판에 마음을 바꾸고 유턴해 광주로 돌아갈 때의 감정 변화 연기가 백미다.

“만섭은 비장한 사명감이나 신념 같은 게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운데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죠.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양심과 상식, 결단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는 “택시운전사는 비극의 재연이 아니라 희망을 얘기하는 데 중점을 둔 영화”라고 했다. ‘1980년 광주에서 이다지도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피터 역은 영화 ‘피아니스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등에서 활약한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치만이 맡았다. 유해진이 광주 토박이 택시운전사 태술 역을,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류준열이 광주 대학생 재식 역을 맡아 송강호와 호흡을 맞췄다.

지난 상반기 국내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는 외화에 밀려 빛을 못 봤다. 하반기 영화 대전에 뛰어든 ‘택시운전사’에 영화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그는 “아직도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부심보다는 부담감이 크다”며 “아픈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어떤 비전을 얘기할 것인지 고민하며 준비한 만큼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