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600권의 수학책을 주문했다. 주문한 책의 5분의 2는 1학년과 2학년 책이다. 책 한 권의 무게는 400g이다. 1학년과 2학년 책의 무게는 모두 얼마인가?’

초등학생의 계산능력에 대한 연구에서 학력수준이 중간 정도인 서울, 경기, 대전 소재 초등학교 6학년 학생 100여 명에게 제시한 문제다. 이 문제의 풀이 과정과 답은 600×2/5×400=96000(g)이다. 풀이 과정과 답을 모두 맞힌 학생은 52%, 과정과 답 중 하나만 맞힌 학생은 14%, 모두 틀린 학생은 23%, 무응답 11%였다. 그러나 이 문제를 본 성인이라면 암산은 어렵더라도 펜과 종이만 있으면 풀이 과정과 답을 어렵지 않게 맞힐 수 있다고 느낀다. 대부분 성인이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계산능력을 익혔기 때문이다.

이런 계산능력에는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 같은 사칙연산 능력과 백분율을 이해해 간단한 이자율을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이것이 금융소비자나 투자자로서 갖춰야 할 재무계산능력이다. 성인은 재무계산능력을 잘 갖추고 있을까. 영국 정부의 한 조사 결과 재무계산능력의 기준선(9~11세 아동에게 요구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성인이 700만 명에 달했다. 미국 독일 등의 조사에서도 성인의 20% 이상이 계산능력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계산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있고, 계산능력 검사에 응하는 동기가 부족한 사람도 있다. 어쩌면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다. 적잖은 사람이 “내가 이런 거 굳이 해야 해”라는 생각에 소극적으로 검사에 참여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재무계산능력은 가볍게 여길 대상이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금융상품을 선택하거나, 투자결정을 내릴 때 가장 기초가 되는 자질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무계산능력은 투자결정 전에 반드시 따져봐야 할 위험수용 성향과 관계가 깊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봐야 한다.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재무계산능력과 위험수용성향을 분석한 연구를 소개한다. 먼저 재무계산능력 측정 방법부터 알아보자. 영국과 미국에서 사용된 세 가지 문제로 진단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동일한 기종의 TV가 A대리점과 B대리점에서 서로 다른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어느 대리점의 판매 가격이 더 저렴한가? A대리점(50만원, 10% 세일), B대리점(40만원)’이다. 백분율을 이해하고 간단한 곱셈을 할 수 있으면 정답(B대리점)을 알 수 있다. 정답률은 한국 87.1%, 영국 85%였다.

두 번째 문제는 ‘은행에서 6%의 연이율로 5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첫해 은행에 납입해야 하는 이자비용은 모두 얼마인가?’이다. 정답은 300만원이고, 정답률은 한국 57.3%, 영국 61%로 나타났다.

세 번째 문제는 ‘신용대출기관에서 20% 연이율로 100만원을 대출받았다. 채무액이 대출받은 금액의 두 배가 되는 시기는 언제인가?’이다. 네 가지 보기(2년, 5년 안쪽, 5~10년, 10년 이상) 중 정답은 ‘5년 안쪽’이다. 정답률은 한국 42.2%, 미국 36%였다. 국내 성인 중 세 문제를 모두 맞힌 사람은 27%였고, 두 문제를 맞힌 사람 39%, 한 문제를 맞힌 사람 29%였다.

위험수용성향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봄으로써 측정할 수 있다. ‘당신이 TV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3단계까지 정답을 잘 맞혀 상금 200만원을 획득했다. 이제 4단계 퀴즈에 도전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정답을 맞히면 추가로 상금을 받지만 틀리면 이미 획득한 200만원도 받을 수 없다. 다음 중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4단계 퀴즈에 도전하지 않고 상금 200만원을 받기로 한다면 위험을 가장 꺼리는 사람이다. 반대로 난이도 최상 문제(예상 정답률 5%)를 선택해 상금 1억원을 노린다면 위험수용성향이 가장 높다.

앞의 연구에서 재무계산능력이 높을수록 위험수용성향이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위험수용성향이 높아야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위험수용성향은 위험자산 비중을 증가시킴으로써 장기적 관점에서 가계의 부를 키우는 데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만큼 재무계산능력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