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말기 ‘천재 검객’ 사사키 고지로가 긴 칼을 늘어뜨린 채 홀로 서 있다. 초조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결투 상대인 미야모토 무사시는 붉은 태양을 등지고 약속 시간보다 한나절이나 늦게 나타난다. 흥분한 고지로는 무사시가 바닷물에 담가둔 목도가 자신의 장검보다 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고지로가 바닥에 차오른 물로 인해 발이 둔해지는 순간 무사시가 뛰어오르며 목검으로 그의 머리를 가격한다. 고지로는 무사시의 단 일격에 허무하게 쓰러진다.

일본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가 연출한 연극 ‘무사시’에 등장하는 ‘간류섬 결투’ 장면이다. 무사시는 60여 차례 결투를 통해 터득한 병법의 도(道)를 기록한 오륜서(五輪書)에서 이렇게 말한다. “싸움을 할 때는 태양을 등지는 자리가 유리하다. 장소의 특수성을 잘 이용하면 싸움에서 손쉽게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안진 경영연구원장은 《오륜서 경영학》에서 손자병법 전쟁론과 함께 세계 3대 병서로 꼽히는 오륜서를 현대 경영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들려준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다’는 무사시의 전술에선 비교·경쟁우위를 논한다. 무사시는 당대 최고수 고지로와의 대결을 앞두고 결투 장소를 사전 답사해 유리한 지형을 파악했고, 고지로의 명검보다 긴 목검을 직접 제작하는 창의성을 발휘했다. 김 원장은 “무사도는 물론 기업가정신도 주어진 여건으로 규정되는 비교우위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자유와 창의로 경쟁우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의 삶도 경쟁 속에서 이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무사시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며 “무사시가 스스로 반추한 승부사의 삶을 통해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