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시간·공간 함께 아우른 숭고미학…단색화 외길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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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선구자 서승원 화백
17일부터 노화랑서 개인전
17일부터 노화랑서 개인전
1940년대 초반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4·19혁명, 민주화운동을 겪은 서승원 화백(76·사진)은 한국적 추상미술의 정체성을 찾으려 좌충우돌했다. 1963년 홍익대 회화과 동기 최명영 이승조 등 9명과 미술단체 ‘오리진’을 결성한 그는 앵포르멜(비정형)로 대변되는 추상표현주의가 판치던 기성 화단에 반기를 들고 차가운 추상, 기하학적 추상화 장르에 불을 붙였다. 대학 졸업 후에도 줄곧 당대 미술의 전위 역할을 했다. 1975년에는 도쿄화랑이 기획한 ‘한국 작가, 5인의 백색’전에 참가해 한국 단색화(코리아 모노크롬)를 촉발시켰다. 서 화백이 국내외 화단에서 추상미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까닭이다.
오리진 창립 멤버로 한국 단색화를 개척한 서 화백이 오는 17일부터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평생 추상작업에 매달려온 작가가 197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30여 점의 유화를 선보이는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초창기를 주도한 서 화백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앞서간 작가정신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다.
서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내가 살아온 순간의 경험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젊은 시절 국내 화단을 지배한 추상표현주의가 안겨준 일말의 허무감을 극복하려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는 그는 한국의 전통 색감을 더해 산사 풍경처럼 고요한 기하학적 추상을 창조했다.
서 화백은 요즘도 작품의 자양분을 채집하려 해인사, 수덕사, 백양사, 백담사 등 산속의 절을 찾아 나선다. 산사의 새벽 법회에서 예불을 드리며 목탁 소리에 빠져들거나 청명한 새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기서 느낀 감흥과 자연의 생기를 시적 운율과 음악적 리듬으로 풀어낸다. 자연의 색과 소리에 사색과 명상의 여운이 더해진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자아와 시간, 공간, 촉각(붓질)의 동일체로 읽혀진다. 서 화백이 반세기 동안 일관되게 추구한 작품 제목을 ‘동시성’으로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는 “동시성은 동일하고 균등한 시간성을 다시금 동일하고 균등한 공간성으로 대체시키면서 자신의 생각과 형태, 색채, 공간, 시간을 일체화시키려는 탐색”이라고 설명했다.
주제는 같아도 초기와 지금의 작품은 많이 다르다. 초창기 엄격한 기하학적 패턴을 고수한 그의 작품은 1990년대 들어 형태가 지워지고 색면이 서로 겹치며 다채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색감도 예전엔 빨강, 청색 등 다양하게 썼지만 최근에는 흐릿하게 탈색한 듯한 파스텔 계열을 즐겨 사용한다. 손에 잡힐 듯하지만 잡히지 않는, 마치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화면은 그렇게 떠 있다. 수십 년 세월을 갈고 닦은 그의 붓질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미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좋음과 싫음, 많음과 적음,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색채미학으로 버무렸다”며 “화면에 속취(俗趣)와 시기가 들어설 틈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0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오리진 창립 멤버로 한국 단색화를 개척한 서 화백이 오는 17일부터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평생 추상작업에 매달려온 작가가 197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30여 점의 유화를 선보이는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초창기를 주도한 서 화백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앞서간 작가정신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다.
서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내가 살아온 순간의 경험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젊은 시절 국내 화단을 지배한 추상표현주의가 안겨준 일말의 허무감을 극복하려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는 그는 한국의 전통 색감을 더해 산사 풍경처럼 고요한 기하학적 추상을 창조했다.
서 화백은 요즘도 작품의 자양분을 채집하려 해인사, 수덕사, 백양사, 백담사 등 산속의 절을 찾아 나선다. 산사의 새벽 법회에서 예불을 드리며 목탁 소리에 빠져들거나 청명한 새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기서 느낀 감흥과 자연의 생기를 시적 운율과 음악적 리듬으로 풀어낸다. 자연의 색과 소리에 사색과 명상의 여운이 더해진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자아와 시간, 공간, 촉각(붓질)의 동일체로 읽혀진다. 서 화백이 반세기 동안 일관되게 추구한 작품 제목을 ‘동시성’으로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는 “동시성은 동일하고 균등한 시간성을 다시금 동일하고 균등한 공간성으로 대체시키면서 자신의 생각과 형태, 색채, 공간, 시간을 일체화시키려는 탐색”이라고 설명했다.
주제는 같아도 초기와 지금의 작품은 많이 다르다. 초창기 엄격한 기하학적 패턴을 고수한 그의 작품은 1990년대 들어 형태가 지워지고 색면이 서로 겹치며 다채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색감도 예전엔 빨강, 청색 등 다양하게 썼지만 최근에는 흐릿하게 탈색한 듯한 파스텔 계열을 즐겨 사용한다. 손에 잡힐 듯하지만 잡히지 않는, 마치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화면은 그렇게 떠 있다. 수십 년 세월을 갈고 닦은 그의 붓질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미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좋음과 싫음, 많음과 적음,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색채미학으로 버무렸다”며 “화면에 속취(俗趣)와 시기가 들어설 틈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0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