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으로 질병 예방은 물론 신약까지 개발하는 바이오벤처들이 국내에도 생겨나고 있다. 바이오뱅크힐링이 그렇다. 대변에 있는 미생물로 각종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이동호 바이오뱅크힐링 대표는 “대변 속 미생물을 활용해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더 나아가 신약 개발에도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이기도 한 이 대표는 장 속에 있는 미생물의 잠재력을 진작부터 알아보고 지난해 회사를 세웠다. 30년 가까이 수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장염에서 정신질환까지 다양한 질병이 장내 미생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강한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 좋은 미생물들마저 모조리 죽는다”며 “장염을 앓던 백혈병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했더니 씻은듯이 나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장 속의 미생물을 ‘잊혀진 장기’라고 했다. 장기에 걸맞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장 속에 사는 미생물을 한데 모아 무게를 재면 간의 무게와 얼추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는 “남극에 가면 숙주인 인간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몸 속 미생물들이 발열량을 늘린다”며 “몸 속 미생물들도 먹고 살기 위해 사람의 건강을 유지하도록 갖은 노력을 다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뱅크힐링은 대변에 있는 미생물을 분석해 각종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장내 미생물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게 무너지면서 크론병, 베체트병을 비롯해 장염, 자가면역질환, 대사질환 등 각종 질병이 시작된다. 이 대표가 같은 병원의 김상윤 신경과 교수에게 동업하자고 손을 내민 것도 장내 미생물이 소화기뿐만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에도 관여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장내 미생물로 질병의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고 장내 미생물이 다시 균형을 이루도록 조치를 취한다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며 “미국에서는 집에서 대변을 용기에 담아 분석기관에 보내 장내 미생물의 상태를 검사받는 서비스가 상용화됐다”고 말했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유익균들을 뽑아내 냉동시켜 보관해 뒀다가 필요한 환자에게 투여하거나 신약 개발에 활용하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유익균으로 만든 신약을 허가할 만큼 유익균의 활용 가치는 의학적으로는 충분히 입증됐다는 분석이다. 대변에서 추출한 장내 미생물로 신약을 개발하는 미국 기업 세레스 테라퓨틱스는 나스닥에 상장까지 했다. 시가총액은 5000억원에 육박한다.
이 대표는 “대변은 더 이상 더럽고 피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돈을 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줄 것”이라며 “2년 뒤에는 준비하고 있는 서비스를 세상에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바이오뱅크힐링은 대변에서 추출한 유익균을 신약 등에 활용하려면 어떻게 가공할 것인지, 유해균은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 등 기술적인 과제를 넘어야 한다. 이 대표는 “우리에게 직접 투자를 하기도 한 MD헬스케어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