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정 '홀인원 쇼'…괴물, LPGA 메이저 삼키나
‘괴물’ 성은정(18·영파여고·사진). 지난해 US여자주니어아마추어챔피언십과 US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을 싹쓸이한 아마추어 여자골프 세계 최강자다. 두 개의 세계 최고 권위 아마추어 대회를 한 해에 모두 제패한 여자 선수는 골프 역사상 그밖에 없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루키 박성현(24·KEB하나은행)을 넘어설 ‘K골프의 후계자’란 말을 듣는 것도 진화를 거듭하는 그의 파괴력 때문이다.

판이 다른 프로 무대를 평정하려면 세기(細技)와 멘탈을 더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는 그다. 같은 나이에 이미 LPGA 메이저대회(에비앙챔피언십) 최연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리디아 고(뉴질랜드)의 천재성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도 없지 않다. 성은정이 존재감을 각인시킬 기회를 잡았다. 31일 개막한 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에서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 다이나쇼어코스(파72·6763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쳤다. 선배 박성현, 유소연(27·메디힐), 미셸 위(미국)와 어깨를 나란히 한 공동 2위다.

전반은 독주였다. 1번(파4), 2번홀(파5) 연속 버디 직후 터져나온 5번홀(파3) 홀인원이 압권이었다. 6번 아이언으로 부드럽게 친 공은 185야드를 날아가 홀컵으로 빨려들어갔다. 생애 두 번째 홀인원. 성은정은 “중학교 1학년 때 제주도지사배에서 첫 홀인원을 한 이후 아이언샷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는데, 또 홀인원을 해 좋은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홀인원이 터져나온 전반에만 그는 버디 3개를 뽑아내 5언더파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드라이버샷이 왼쪽으로 감기기 시작한 후반이 아쉬웠다. 10번홀(파4)과 12번홀(파4)에서 연속 보기가 나왔다. 12번홀은 1m도 채 안되는 파 퍼팅을 놓쳤다. 잇따른 실수로 선두 경쟁에서 밀려나는 듯했던 성은정은 15번홀(파4)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분위기를 바꾼 채 경기를 마무리했다. 성은정은 “우승해서 연못에 다시 한번 더 뛰어들고 싶다”고 말했다.

성은정은 지난해 다이나쇼어코스에서 열린 주니어선수권대회를 제패해 연못에 뛰어든 경험이 있다. 46년째 같은 장소에서 대회를 치르는 ANA인스퍼레이션(옛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 대회는 시상식 후 우승자가 18번홀 그린 옆 연못에 뛰어드는 게 전통이다.

성은정에겐 ‘입수 세리머니’를 할 호기다. 다이어쇼어코스는 전장이 6763야드로 길고 페어웨이가 딱딱해 장타자에게 유리하다. 성은정은 이날 평균 283야드의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같은 꿈을 꾸는 강자들을 모두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다. 보기 없는 무결점 경기를 펼친 박성현과 송곳 아이언샷을 선보인 유소연 등 K골퍼 선배들만이 아니다. 유럽투어 5승을 올린 단독 선두(5언더파) 카린 이셰르(프랑스)보다도 정작 경계해야 할 대상은 ‘돌아온 천재’ 미셸 위다. 이셰르는 아직 LPGA 투어 우승이 없다. 미셸 위는 다르다. 그는 메이저대회 US오픈을 비롯해 통산 4승을 거머쥔 멀티챔프다. 좌충우돌했던 스윙과 퍼팅 실험도 거의 끝나가는 모습이다.

이날 대회는 강풍으로 오후조 경기가 하루 순연되는 바람에 박인비(28·KB금융그룹), 전인지(23), 김세영(24·미래에셋), 이보미(28) 등이 경기를 마치지 못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