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 ‘BB 레이디’
불가리 ‘BB 레이디’
세이코가 3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시계박람회 ‘2017 바젤월드’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하위 브랜드이던 그랜드세이코를 독립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세이코는 그랜드세이코가 매년 매출이 100% 증가하는 등 고속성장하자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랜드세이코가 기술력이 뛰어난 데다 제품 가격이 저렴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시계업계에도 ‘가성비’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파텍필립 '53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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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에서 만난 업체들은 올해 시계업계의 트렌드로 가성비, 여성, 여행을 꼽았다. 시계를 구매하는 소비패턴의 변화가 불러온 트렌드다. 과거 소비자들의 시계 구매 코드는 ‘사치’ 또는 ‘과시’였다. 이것이 ‘실용’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업체들은 제품 가격은 올리지 않고,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성비를 높였다. 글라슈테, 해밀턴 등 업체가 대표적이다. 해밀턴은 파워리저브를 늘리고 다이얼 코팅 방식을 바꿔 제품을 고급화했다. 가격은 그대로다.

오래전 선보였던 모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놓은 브랜드도 많았다. 브랜드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비해 시계 구매가 줄면서 소비자들이 이왕 시계를 살 때는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를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롤렉스, 오메가, 티쏘, 태그호이어, 론진, 쇼파드 등 브랜드가 역사를 강조하며 예전 모델을 다시 내놓기도 했다.

시계 매출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여성 시계 종류는 늘고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론진에서는 5년 전만 해도 8 대 2였던 남녀 판매 비중이 지난해 6 대 4로 바뀌었다. 여성 시계 가격이 더 높아 매출 비중은 남녀가 비슷하다. 브레게는 올해 여성 시계인 레인 드 네이플 미니 라인에 신제품을 추가했다. 이지연 브레게코리아 이사는 “작년부터 여성 시계가 세계적 화두”라며 “올해 브레게도 여성용 제품을 더 내놨다”고 설명했다. 남성 제품만큼 다이얼이 커진 여성 시계도 눈에 띄었다. 오메가 여성용 시계 스피드마스터 38㎜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시계를 팔찌와 같은 액세서리로 보는 여성이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시계 자체의 멋에 빠진 여성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성파워 커진 명품시계 가성비를 따지다
불가리, 파텍필립, 롤렉스 등에서는 한 가지 시계의 스트랩을 교환해 다양한 스타일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 눈에 띄었다. 여성 소비자가 늘면서 생긴 변화라고 했다. 남성에 비해 코디가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계 하나만 있어도 여러 개를 가진 것 같은 효과가 나기 때문에 가성비도 높아진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시계 대신 스트랩을 여러 개 판매하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다. 해밀턴은 스트랩 등 액세서리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20%가량을 차지한다.

업체들은 여행객을 떠오르는 소비층으로 겨냥했다. 세이코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시계인 아스트론 시리즈를 새롭게 내놨다. GPS 기능으로 시간을 자동으로 맞춰주기 때문에 해외 이곳저곳으로 다니는 여행객에게 제격이라고 설명했다. 롤렉스는 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오이스터 퍼페추얼 스카이드웰러’를 옐로골드와 화이트골드 버전으로 선보였다. 다이얼에 야광 크로마 라이트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인다. 시곗바늘 길이도 늘려 가독성을 높였다.

여행에서는 지나치게 힘준 디자인보다는 캐주얼과 정장에 두루 착용할 수 있는 시계가 제격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청판’이라 불리는 블루 다이얼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딱딱해 보이지 않아 어느 옷과도 잘 어울린다. 티쏘, 세이코 등은 블루 다이얼 제품을 늘렸다. 다른 브랜드도 미묘하게 다른 청색으로 다이얼을 디자인한 점을 강조했다. 김덕호 티쏘코리아 과장은 “작년부터 블루 다이얼 제품이 시계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올해는 각 브랜드가 청색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바젤=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