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리학자 매들린 L 반 헤케가 미국 중부 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돈이 필요해 자동현금입출금기(ATM)가 설치된 차선으로 들어선 그는 동행한 외국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장애인의 고충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나라입니다. 여기 이렇게 친절하게 점자 사용설명서가 있네요.” 상대는 웃으며 말했다. “돈을 뽑기 위해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시각장애인 운전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네요.”

순간 그는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전용’ ATM에 점자 사용법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옆거울로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생각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맹점이 나타나는 원인을 유형화하고,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극복 전략을 담은 《나는 왜 자꾸 바보짓을 할까》를 쓰게 된 계기다.

사람은 누구나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패턴을 파악하려는 성향 때문에 이런 맹점이 생긴다. 사물이나 사건을 손쉽게 분류하는 데는 이런 성향이 도움이 되지만, 일단 분류가 끝나면 그 이면에 존재하는 더 많은 특질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은 특정한 세계관처럼 이미 발견된 패턴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바보 같은 실수를 했을 때 자책하는 대신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해보라고 말한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박테리아 배양 접시 옆에 핀 곰팡이가 박테리아를 어떻게 죽였는지 의구심을 갖고 자문하는 과정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나 사고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알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상대도 좀 더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