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약 350만개의 중소기업이 있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 일자리의 88%를 담당하고 있다. 전국 926개 중소기업 협동조합은 중소기업계를 대표하는 지역·업종별 대표 조직이다. 이들은 한국 경제의 저변을 형성하며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계 대표를 뽑는 협동조합 정기총회가 이달 말 집중적으로 열린다. 올해는 926개 협동조합 중 172개 조합(연합회 5개, 전국조합 48개, 지방·사업조합 119개)이 이사장을 뽑고 조합의 사업 방향 등을 결정한다. 정기총회 시즌을 맞아 협동조합 장수 이사장들의 리더십도 재조명받고 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중소기업 협동조합 이끈 '섬기는 리더십'
장수 조건은 리더십, 솔선수범

중기 협동조합 이사장 중에는 10년 이상 업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몇몇은 30년 가까이 조합을 맡고 있다. 장수 이사장들은 가장 중요한 임무가 신규 사업 등 신성장 동력으로 조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사업 진출은 2007년 단체수의계약제도가 폐지된 뒤 조합의 최대 화두다.

장수 이사장 중에는 적극적으로 조합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신규 사업 발굴(business) 이외에도 강한 리더십(leadership), 업계를 대변하겠다는 솔선수범과 봉사정신(service)으로 요약된다. 이른바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다.

강영식 한국조명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조합 활성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장수 이사장이다. 1991년 이후 27년째 조직을 이끌고 있다. 잔여 임기가 2019년까지여서 30년에 육박할 전망이다. 강 이사장은 규모가 작은 조합사를 살리는 데 집중해 왔다. 자동 조명 점멸기를 만드는 A 조명업체는 자금력이 부족해 신제품의 제조 규격과 인증 기준을 얻지 못했다. 문을 닫기 직전까지 갔다가 강 이사장이 추진한 공동 연구개발에 참여해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강 이사장은 “조명 분야는 사업 규모가 작은 다품종·특화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많다”며 “업계 의견을 조율할 때도 소규모 업체들이 영역을 확보할 수 있게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밖에선 대변자, 안에선 조율자

정규봉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정수기업계 대표다. 올해 시작한 아홉 번째 임기는 2021년까지다. 그는 코웨이, 청호나이스 등 대형 기업 사이에서 중소업체의 생존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이사장은 국내 정수기 시장이 막 형성되던 1990년 무렵부터 업계를 대변해 왔다. 1994년 정수기관리법(먹는물관리법 법령고시 및 제정)이 제정될 때도 나서서 업계 입장을 알렸다. 정 이사장은 올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업계 화두로 던졌다. 정수기 전용공단을 조성해 미국, 일본, 인도 등의 시장을 뚫겠다는 계획이다. 정명화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인간 전자저울’로 불린다.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균형 감각이 뛰어나서다. 그는 2002년 조합을 맡은 뒤 업체 대표들을 모아 정보기기, 통신장비, 원격통신기기 등 세부 업종별 6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정 이사장은 “전자부품업계가 그동안 복잡하게 세분화됐다가 최근에는 융·복합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며 “산업 흐름에 맞춰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등 공동의 목표를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황일수록 이사장 경험이 중요”

서석홍 한국PP섬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내부 갈등을 겪던 조합을 추슬러 틀을 잡고 18년째 이끌고 있다. 배조웅 서울경인레미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 한경수 한국펌프공업협동조합 이사장도 15년 가까이 업계를 대변하고 있다. 배 이사장은 순간 판단력과 중재 능력이, 한 이사장은 공동사업 발굴과 운영 능력이 장점으로 꼽힌다. 이흥우 한국낙화생가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폭넓은 대외활동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최전남 한국자동제어공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이동형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원재희 한국폴리부틸렌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도 강한 리더십으로 10여년간 조합원의 지지를 받고 있다.

유영호 중소기업중앙회 회원지원본부장은 “장수 이사장들은 오랜 기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 다양한 네트워크로 누구보다 업계를 잘 아는 전문가”라며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이들의 소중한 경험 등이 중소기업계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