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대사·친북매체 '南 스캔들' 거론…수사 속도내자 다급한 대응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 피살 사건에 대한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가 진척되면서 궁지에 몰린 북한의 대응에 초조함이 묻어나고 있다.

물밑 교섭을 통해 김정남 시신을 부검 없이 조기 인수하려던 시도가 여의치 않자, 한국 정부까지 끌어들인 '음모론'으로 사건의 진상을 흐리려는 모양새다.

사건 발생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던 강철 주(駐)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지난 17일 밤(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 종합병원 영안실 앞에서 돌연 입을 열었다.

그는 A4 3쪽 분량의 서면자료에서 "우리 영사관의 보호를 받는 외교관 여권 소지자인 그(김정남)에 대해 우리가 부검을 반대했음에도, 말레이시아는 우리의 허락 없이 이를 강행했다"며 "우리가 입회하지 않은 가운데 이뤄진 부검결과를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극물에 의한 피살이라는 쪽으로 부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지자 미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선수를 친 것이다.

특히 그는 "한국 정부가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이를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해 북한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김정남 사망 배후로 북한을 거론하는 것은 최순실 사태에 따른 정국 불안정을 덮기 위한 한국의 '정치적 음모'라는 것이다.

음모론은 최근 미국에 기반을 둔 친북 매체 '민족통신'에도 잇달아 등장했다.

이 매체는 지난 15일에는 "이같은 사건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중략) 한국의 박근혜 세력"이라고 주장했고, 17일에는 이번 사건이 "국정원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강변한 바 있다.

북한 측이 '한국 연루설'을 잇따라 제기하는 것은 북한 소행에 가까운 쪽으로 수사망이 좁혀지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둘러싼 의혹에 '물타기'를 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 사건 수사 착수 이후 처음으로 지난 17일 밤 '리정철(Ri Jong Chol)'이라는 이름의 북한 국적자를 체포했다.

또 현지 중문매체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15일 실시한 김정남의 시신 1차 부검에서 사인을 결론 내리지 못하자 재부검 방침을 밝히는 등 진상 규명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정남의 존재 자체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닫아 온 북한이 현지 고위급 외교관을 통해 다소 위험을 감수한 공개 대응에 나선 것도 이런 상황에 압박을 느꼈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도 노출되는 관영매체가 향후 이 사건을 직접 거론하며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건을 언급하면 또 다른 '백두혈통'의 존재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적대세력의 책동'에 대한 비난 공세를 높이는 방식으로 간접 대응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8일 자 2면 전면에 '우리의 존엄'이라는 제목으로 1만3천여 자에 달하는 장문의 정론을 실은 것이 눈길을 끈다.

정론은 김정남 사건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하나의 식민지 행성으로 거머쥐려고 핵사슬로 칭칭 휘감은 미국은 '자유의 여신'이고 그 괴물의 압제로부터 자기의 존엄을 지키려는 나라는 유엔의 피고석에 앉아야 할 만큼 이 세계가 너절해졌는가"라며 국제사회의 대북 비판여론 일반을 강하게 반박했다.

또 '가증스러운 원수들'이 "우리 사회주의의 영상을 어지럽히려고 온갖 소름 끼치는 거짓 나발을 국제사회에 기를 쓰고 퍼뜨렸다"며 "조선을 건드리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