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3년 전 100여년의 Fed 역사상 첫 여성 수장으로 취임했다. 벤 버냉키 전 의장에게서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라는 비상정책을 물려받았다. 이후 두 번의 금리 인상이라는 출구전략을 쓰면서도 미국 경제를 안정적으로 회복시켰다. 그런 옐런을 흔드는 외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새로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가 진원지다.
◆맥헨리 의원은 트럼프 측근

옐런 의장은 지난달 31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부위원장인 패트릭 맥헨리 의원(42·공화당)에게서 한 통의 서한을 받았다. 국제 금융규제 관련 회의 참석을 자제하라는 ‘경고장’이었다.

맥헨리 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난해 대선 초기부터 지원한 7선(選)의 강경 보수파 정치인이다. 이란을 비롯한 7개 무슬림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금지 행정명령, 오바마케어(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도입한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폐지, 월가 금융규제 완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를 밝혔는데도 (옐런 의장이) 지속적으로 금융규제를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회의로는 금융안정위원회(FSB)와 바젤위원회, 국제보험감독자협의회(IAIS)를 적시했다. 주요 20개국(G20) 산하 FSB는 세계 금융 안정을 꾀하는 기구이고, 바젤위원회는 은행, IAIS는 보험사에 관한 전반적인 감독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제회의 규제가 미국 성장 막아”

맥헨리 부위원장은 “그동안 은행 자본과 보험, 파생상품, 시스템 리스크, 자산관리 등과 관련해 이런 기구들이 내린 결정이 미국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참석 여부를 정해야 한다”며 “지금은 결정 과정에 투명성과 책임성, 정당성이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국제회의에서 결정된 글로벌 금융기준이 미국 내 금융규제를 만들어냈고, 이는 미국 경제 성장을 둔화시켰다는 주장이다. 은행 자본 강화를 요구하는 바젤Ⅲ 협정의 경우 미국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Fed가 논의해 탄생시켰다고 예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월가 금융규제를 대폭 풀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행정부의 결정이 나기 전에 미 금융규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국제회의 결정에 참여하지 말라는 얘기다.

에릭 콜리그 Fed 대변인은 2일 “서한을 받았다”며 “곧 답변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Fed 개혁하겠다는 공화당

미국 언론들은 맥헨리 부위원장의 서한이 Fed 개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CNBC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수차례 옐런 의장을 교체하겠다고 공언했다”며 “옐런 의장의 힘을 빼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늦어도 오는 여름이면 옐런 의장의 후임을 지명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럴 경우 옐런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레임덕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 의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블룸버그통신은 공화당이 발의한 ‘Fed 감사법’의 통과 가능성을 점쳤다. Fed 감사법은 △공식에 따른 통화정책 결정 시스템 도입 △Fed의 긴급대출 권한 제한 △뉴욕 연방은행 총재 임명 시 상원 인준 의무화 △통화정책보고서 의회 제출 주기 단축(반년→3개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 완본 3년 내 공개(지금은 5년 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옐런 의장은 지난해 감사법안이 제출되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치고, 장기적인 미국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의회를 설득해 입법을 막았다. 공화당이 지난해 11월8일 대선과 같이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피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