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종로떡집 사장이 설 연휴용 떡 선물세트를 포장하고 있다. 이 사장은 설 연휴가 코앞인데 떡을 사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이정숙 종로떡집 사장이 설 연휴용 떡 선물세트를 포장하고 있다. 이 사장은 설 연휴가 코앞인데 떡을 사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떡이 무슨 죄야. 재수없게 김영란법 1호 위반 사례로 걸리면서 떡집들 다 문 닫게 생겼지.”

서울 낙원동에서 종로떡집을 운영하는 이정숙 사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떡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데다 작년 9월 한 민원인이 강원 춘천경찰서 수사관에게 4만5000원짜리 떡 상자를 준 것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을 위반한 첫 사례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떡 상자는 절대 주고받으면 안 되는 기피 대상이 됐다. 이 사장은 “2년 전만 해도 낙원상가 주변에 13개가량 떡집이 있었는데 다 망하고 이제 떡집이 4개만 남았다”며 “그나마 명절 장사로 버텨 왔지만 이젠 그것도 기대할 수 없어 어떻게 장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했다.

카페촌으로 변한 낙원동

작년 9월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되자 낙원동 떡집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대부분의 떡 선물세트를 5만원 이하로 낮춰 기업과 근처 광화문 정부 부처를 상대로 거래를 유지했다. 하지만 경찰관에게 떡 선물을 한 김영란법 1호 위반자가 지난달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공무원은 물론 기업 고객들도 발길을 뚝 끊었다.

강세동 떡바루떡집 사장은 “원래 설 1~2주 전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떡을 사 갔는데 지금은 파리만 날린다”며 “김영란법 시행 후에는 2만~3만원짜리 선물이라도 받는 것 자체를 꺼린다”고 말했다. 이어 “4만5000원짜리 떡 선물이 김영란법 처벌 대상이 되자 공무원들이 몸을 사려 작은 선물도 주고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카시아떡집을 운영하는 김남수 사장은 “공무원이 전체 손님의 20% 이상인데 이번 설엔 공무원들 구경도 못 했다”며 “김영란법이 시행돼도 2만~3만원짜리 떡 선물은 살 줄 알았는데 떡 상자가 김영란법에 엮이면서 완전히 망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부정부패를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사람 사이에 명절 인사할 정도의 융통성까지 없애면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떡집들이 모여 있어 떡전골목으로까지 불리던 낙원상가 근처엔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목 좋기로 소문났던 제일떡집은 2015년 이디야 카페로 바뀌었다. 평양떡집이 있던 자리엔 음료와 간단한 떡을 함께 파는 떡카페가 등장했다.

“절반 이상이 폐점 고민”

아직 영업 중인 떡집 사장들도 한계상황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가장 큰 낙원떡집은 올해 직원 8명 중 4명을 내보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이 반토막 나 8명의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귀 낙원떡집 사장은 “장사가 안되니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없었다”며 “사정을 아는 직원들이 제 발로 나갔다”고 설명했다. 한국떡류식품가공협회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서울 시내 대부분 떡집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며 “폐점을 생각하는 자영업자가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과 상관없이 고급 떡세트로 상품을 특화해 위기를 기회로 삼은 떡집도 있다. 비원떡집이 대표적이다. 안상민 비원떡집 사장은 10만원 이상의 떡세트 판매에 집중했다. 동시에 온라인 주문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안 사장은 “전통적인 한국 떡 맛을 유지하면서도 포장은 현대적이고 고급스럽게 해 김영란법 이후에도 10만원 이상 떡 선물이 많이 나가고 있다”며 “인터넷으로 판매 경로를 넓혀 오프라인과 온라인 주문을 50 대 50으로 맞춰 매출을 늘려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