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서양에 패한 19세기 중국...증오하기보다 '자성' 택했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걸려 있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지금은 문턱을 넘는 건 고사하고 퇴행마저 걱정하는 분위기다. 최근의 국정 농단 사태는 우리 정치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많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위기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두양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 건명원의 초대 원장을 맡고 있다. 이 책은 그가 건명원에서 한 다섯 차례의 철학 강의를 묶은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철학은 유명 철학자들의 지식과 사상을 외워 나열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철학이란 “스스로의 삶에 관해 직접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생각하지 못하는 개인으로 이뤄진 국가는 그 방향성을 상실한 것과 같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생각의 높이가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고, 시선의 높이가 활동의 높이를 결정하며, 활동의 높이가 삶의 수준을 결정해, 결국 세계의 수준을 결정한다.” 결국 지금 우리가 처한 국가적 위기는 각 개인의 생각 능력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유의 네 단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철학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네 단계란 기존의 것을 철저히 버리는 ‘부정(否定)’,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선도(先導)’, 기존의 것과의 불화를 자초함으로써 종속적인 나를 벗어던지는 ‘독립(獨立)’, 참된 나를 찾고 나만의 진리를 구축하는 ‘진인(眞人)’이다. 이들 네 단계를 저절로 실천하게 해주는 잘 짜인 수업 같은 커리큘럼은 없다. 저자는 다만 중국의 사례를 통해 이 과정이 왜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들려준다.

19세기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필사적으로 관찰했다. 그 시작으로 과학기술과 정치제도를 받아들였다. 종국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걸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에 바꿨다. 이는 곧 뼈아픈 부정·선도·독립·진인의 과정이었다. 이런 자성이 패배를 딛고 미국과 어깨를 겨누는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중국은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라며 “우리 또한 지금의 대한민국을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