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티켓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스테이지 메이커스’에서 투자자를 모집해 오는 3월 공연하는 싱어송라이터 오왠.
멜론 티켓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스테이지 메이커스’에서 투자자를 모집해 오는 3월 공연하는 싱어송라이터 오왠.
인디음악 애호가인 대학생 정희정 씨(24)는 요즘 3월만 기다린다. 자신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가수 오왠과 이영훈의 공연이 잇달아 열리기 때문이다. 소액 투자에 참여한 덕분에 가수가 부를 곡도 직접 골랐다. 정씨는 “좋아하는 가수를 보려면 버스킹(길거리 공연) 장소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해 번거로웠는데 직접 선투자하는 형식으로 좋아하는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음악 창작자의 후원자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문화계 크라우드 펀딩이 콘서트 개최와 신인 음악인 발굴로 확대되고 있다. 투자자 의견을 공연이나 앨범에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익 걱정에 콘텐츠 제작을 주저하던 기획사나 예술인은 수요를 손쉽게 파악하고, 소비자는 좋아하는 콘텐츠에 자신의 취향을 더할 수 있어 인기다.

◆관객이 투자…‘스테이지 메이커스’

신인가수 이나연
신인가수 이나연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예매 서비스 멜론 티켓은 지난달 말 공연 크라우드 프로젝트 ‘스테이지 메이커스’를 선보였다. 싱어송라이터 오왠과 포크가수 이영훈의 공연, 팝듀오 치즈 멤버인 구름의 솔로 쇼케이스 펀딩을 각각 지원하는 서비스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수의 공연에 투자하고, 투자자가 100명을 넘으면 공연이 성사되는 식이다. 세 가수 모두 약 1주일의 펀딩 기간에 투자자를 100명 넘게 모아 지난 13일부터 공연 예매를 시작했다.

스테이지 메이커스의 펀딩은 일반 콘서트 예매와 다르다. 투자 규모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작하므로 공연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고, 공연 날짜를 제외하면 장소나 초대가수 등 세부 정보도 알 수 없다. 대신 투자자에게 공연 좌석 선점권을 인센티브로 준다. 투자 금액도 공연의 일반 입장권보다 싸다.

오왠의 공연은 1인당 투자 금액을 4만4000원으로 정했다. 일반 입장권은 4만8000원이다. 플랫폼을 통해 공연에 투자한 이들에게서 공연에서 부를 곡 목록도 추천받았다.

◆줄잇는 창작자 지원 크라우드 펀딩

신인 음악인을 발굴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도 나왔다. 재미컴퍼니는 지난해 11월부터 신인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재미스타’를 열었다. 걸그룹 걸스데이와 달샤벳의 프로듀서 출신인 남기상 씨가 총괄하는 프로젝트다.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모바일에 영상을 올리면 시청자가 투표를 통해 1등을 선정한다. 재미컴퍼니가 1등에게 음원 녹음과 싱글앨범 제작금 30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금액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조달하는 식이다. 지난해 말 재미스타 1기 1위로 뽑힌 이나연 씨의 앨범 크라우드 펀딩을 오는 30일까지 받고 있다.

카카오는 콘텐츠 창작자를 정기 후원하는 플랫폼 ‘피플펀딩’을 지난 3일 열었다. 영화나 앨범 등 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대신 창작자 개인을 후원하는 데 초점을 둔 서비스다. 투자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창작자에게 6개월~1년간 매월 창작 후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카카오 측은 “올 상반기 시나리오 작가, 인디밴드, 클래식 연주가, 일러스트레이터, 팝아트, 배우, 코미디언 등 다양한 분야 창작자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키워드 ‘크라우드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은 특히 소규모 콘텐츠 창작자에게 인기다. 한 소규모 음악기획사 관계자는 “CD보다 음원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아이돌이 아닌 음악 창작자가 돈 벌 수 있는 길은 공연뿐”이라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하면 입장권 수요를 파악하고 자금을 미리 확보할 수 있어 공연 개최의 리스크가 확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18일 열린 콘텐츠 정책포럼에서 올해 콘텐츠 트렌드의 하나로 대중이 창작자와 함께 만드는 ‘크라우드 콘텐츠’를 꼽았다. 특정 콘텐츠나 스타의 팬이 투자 등에 참여하는 식으로 콘텐츠 제작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윤호진 콘텐츠진흥원 정책개발팀장은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이 법제화돼 국내에서도 온라인 소액 투자가 가능해졌다”며 “이를 통해 사전에 콘텐츠의 시장성을 검증하고 이용자가 함께 콘텐츠를 만드는 사례가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한결/유재혁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