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14시간의 조사를 1주일간 받고 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 결재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참고인’ 신분으로 연일 불려 나가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소속 운용역 A씨는 특검의 고강도 수사에 업무가 ‘올스톱’됐다고 하소연했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열린 투자위원회를 분 단위로 쪼개 재구성할 정도로 특검 수사가 이뤄져 국민연금 기금운용업무 자체를 마비시킬 정도라는 것이다.

당시 투자위원회에 참석해 주식 의결권 찬반을 결정한 12명의 투자위원과 11명의 배석자는 대부분 출국 금지됐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투자위원은 출국 금지 사실을 모른 채 해외 출장을 가려다 공항에서 제지를 당했다. 이 위원은 “출국 금지 조치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어 더 답답하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최고경영자(CEO)인 문형표 이사장이 지난해 말 구속되면서 국민연금 안팎의 충격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직 이사장 구속이 필요하다는 특검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당장 올해 2월로 예정한 기금운용본부 조직 개편을 기약 없이 미뤄야 할 판이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도 지장을 받고 있다. 작년 중순 열릴 예정이었던 기금운용회 일정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

올 상반기 마무리해야 할 전략적 자산운용 계획과 기금운용 성과 평가 작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 조직 안팎에서 기금 운용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답답해했다.

기금운용본부 내부에서는 실장과 팀장, 팀장과 팀원의 특검 진술이 엇갈리면서 직원끼리 대질심문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투자 리스크가 조금이라도 예상되는 안건은 누가 시켜도 추진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연금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고 연금 사람들이 전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