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야당 한달 넘게 '핑퐁'…난국 수습은커녕 불확실성만 키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여야 합의에 의한 ‘질서 있는 퇴진’은 어렵게 됐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가 대통령 스스로 사퇴 시한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야당은 ‘탄핵 강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박 대통령과 정치권은 지난 10월25일 1차 대통령 담화 이후 진퇴 문제와 관련, 한 달 넘게 ‘핑퐁게임’을 벌이며 수습은커녕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있다. 청와대가 내놓는 수습안은 매번 민심과 정치권 요구를 충족하는 데 부족했다. 야권과 야권 대선 주자들은 자고 일어나면 수위를 높인 새 제안을 내놓거나 자신들의 주장을 뒤집으며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다. 박 대통령과 정치권이 각자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명분 찾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1차 담화에서 사과했지만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거센 역풍을 불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담화 이튿날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과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다. 새누리당이 10월30일 박 대통령에게 거국중립내각을 제안하자 문 전 대표는 태도를 바꿔 반대했다.

지난 11월4일 박 대통령은 2차 담화에서 “여야 대표와 자주 소통하겠다”고 하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별도 특검 도입과 국정조사 수용, 국회 추천 총리 수용 등 세 가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광옥 비서실장이 7일 국회를 찾아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 간 영수회담을 통해 국정혼란 수습책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민주당은 한 실장 면담 자체를 거부했다. 같은 날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야 추천 총리에게 전권을 주면 투쟁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막상 박 대통령이 다음날 정세균 국회의장실을 찾아 “여야가 합의해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제안하자 야당은 이를 거부했다. 박 대통령 제안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잘한 일”이라고 했고,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사실상 2선 후퇴”라고 긍정 평가했지만 이들은 추후 대통령 탄핵으로 돌아섰다.

문 전 대표는 11일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와 거국중립내각에 대통령 권력을 이양하고 내치는 물론 외교와 안보 관련 모든 권한까지 내려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자신이 제안했다가 거부한 거국내각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12일 이른바 ‘100만명 3차 촛불시위’ 이후 야당은 요구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야당은 13일 대통령 퇴진을 본격 주장하기 시작했고, 일각에선 하야와 탄핵을 주장했다. 추 대표는 14일 당초 자신이 조건을 내걸며 반대했던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했다가 당내 반발이 거세자 철회했다.

청와대는 21일 박 대통령의 탄핵이나 퇴진을 전제로 추천하는 총리 후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야당 대선 주자들은 같은 날 국회 주도 총리 선출 등을 요구했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온 것이다. 이후 이들은 대통령 즉각 퇴진과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