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에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의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철강 등 중국산 저가 제품에 지금처럼 반(反)덤핑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이 중국 제품에 부여하던 특혜 관세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통상 분야에서 미국·유럽연합(EU)·일본의 대(對)중 포위망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페니 프리츠커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23일 워싱턴에서 미·중 합동상무위원회가 끝난 뒤 “중국이 시장경제지위로 옮겨갈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WTO 협정상의 시장경제지위 부여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중국이 2001년 12월 WTO에 가입하면서 체결한 가입의정서의 15조2항 때문이다. 이 조항에는 중국에 15년간 비시장경제국지위를 부여하지만 가입 15년이 지나면 만료된다고 적혀 있다. 다음달 11일이 가입 15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은 이 조항을 들어 “15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시장경제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반면 미국과 EU는 “자동으로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맞서왔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쏟아져 들어와 자국 산업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시장경제지위국에는 높은 세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 어려운 탓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일본 재무성이 지난 24일 관세·외환 심의회를 열고 특혜관세를 중국 제품에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5일 보도했다. 특혜 관세는 개발도상국 수출 진흥과 경제 지원을 위해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인하 또는 면제하는 제도다.

일본은 143개국 수입품에 이를 적용하고 있는데 2015년 기준으로 이런 우대 세율이 적용된 수입품의 60%가 중국산이었다. 재무성이 특혜 관세 적용 기준을 바꾸면서 중국과 멕시코, 브라질, 태국, 말레이시아 등 5개국이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9년까지 바뀐 기준이 적용되면 1000~2000개 품목의 관세가 인상된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해당국의 경제가 발전했으니 관세를 우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에 미국과 EU가 중국산 철강, 화학 제품에 반덤핑 조치를 늘리고 있고 일본도 특혜 관세 적용을 중단하면서 이들 국가 간 무역 마찰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 제품에 최대 45%의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중국은 WTO 회원국의 권리로 징벌적 관세를 방어하겠다는 입장이다. 장샹천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부 부대표는 “트럼프는 취임한 뒤 미국이 WTO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