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가 중국에 기술을 건네줄 가능성이 제기돼 반도체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돈과 시장은 있지만 기술은 없는 중국이 재무적 어려움에 빠진 마이크론으로부터 기술을 확보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서다. 특히 기술적 난도가 낮은 낸드플래시뿐 아니라 D램까지 생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마이크론의 미세공정 기술은 한국 업체보다는 떨어지지만 격차가 크지 않은 데다 국내 업체도 1980년대 뒤늦게 진출해 일본 미국 업체를 추월한 전력이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만큼 중국으로의 첨단기술 이전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 업계가 주시하고 있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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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속 中 택한 마이크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창장춘추과기(영문명 YRST)가 마이크론과 기술제휴 협상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회사의 딩웬우 부회장은 “마이크론과 낸드뿐 아니라 D램 기술까지 라이선싱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논의는 내년쯤 마무리돼 기술 제휴뿐 아니라 합작, 지분투자 등 동맹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창장은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국영 반도체 회사인 우한신신(영문명 XMC)을 인수해 세운 회사다.

칭화유니는 2013년부터 꾸준히 반도체 사업 확장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마이크론에 23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가 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저장장치 업체인 웨스턴디지털 인수도 미 정부의 조사로 중단됐다. 칭화유니는 작년 하반기 도시바와 SK하이닉스에 기술 제휴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런데 마이크론이 협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동안 글로벌 메모리업계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중국에 기술을 줬다간 미래 경쟁자를 키울 수 있고, 다른 경쟁자가 먼저 중국과 손잡는다면 아무런 이득 없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위원은 “D램 업계 2, 3위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상대방이 먼저 중국과 손잡으면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다”며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중국과 선제 협력하는 방법을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합작하면 투자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고 확실한 수요를 잡을 수 있다.

마이크론은 D램 미세공정 개발과 3차원(3D) 낸드 개발이 늦춰지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따라 2016년 4분기(6~8월)까지 세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큰 변수

마이크론과 중국의 기술 협력엔 걸림돌이 있다.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칭화유니의 마이크론 인수 제안을 무산시켰으며, 최근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는 ‘중국 국유기업은 미국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협력이 이뤄져도 당장 중국이 경쟁력을 갖는 건 아니다. 마이크론의 기술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비해 1~2세대가량 뒤진다. 현재 보유한 D램 20나노미터(㎚·1㎚=10억분의 1m) 후반대 기술을 중국에 전수할 경우 2년 뒤 양산을 시작하는 창장은 10㎚ 초반대 제품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업체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3D 낸드도 마이크론은 48단 제품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연내 64단 제품 양산을 시작할 계획인 삼성전자는 2년 뒤면 100층을 쌓는 수준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1.15%, SK하이닉스는 0.24% 오르는 등 마이크론과 중국의 협상 소식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반도체펀드와 보조금 등으로 지원할 수 있는 데다 모든 전자제품이 최첨단 부품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어서 중국 내 수요를 기반으로 사업을 꾸려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세계 휴대폰과 PC 등 주요 정보기술(IT)·전자 기기의 3분의 2가량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