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책을 냈다. 제목은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한국경제신문 펴냄). 미국 일본 중국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빚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외교 난맥상을 낱낱이 해부한 책이다. 기획재정부 1차관과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거친 정통 경제관료가 국제 정치와 외교 분야 책을 출간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 17일 서울 충정로 한국공인회계사회 빌딩에서 최 회장을 만나 책에서 다룬 외교 현안 등에 관해 들어봤다.

▷경제관료가 외교 분야 관련 책을 낸 게 흥미롭습니다.

“지식경제부 장관을 마치고 2012년 8월부터 3년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 방문연구원으로 머문 것이 계기라면 계기지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정치를 연구하고 학자와 연구자, 외교관 등을 만나면서 알게 된 한국 외교의 현실과 문제점을 기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던가요.

“한마디로 지금 한국 외교는 국가 실력에 비해 너무 웃자라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워싱턴DC에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치열한 대외 전략을 세우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물론이고 싱크탱크, 민간재단, 일반 기업을 상대로 사활을 걸고 로비전을 펼칩니다. 좋든 싫든, 한국은 아직은 강대국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무슨 초강대국이나 되는 것처럼 워싱턴DC에 대사관 하나 세워 놓고 공식 외교만 합니다. 물밑 로비를 전혀 하지 않아요.”

▷일본만 해도 다른가 봅니다.

“전혀 다르죠. 일본은 많은 민간재단을 통해 워싱턴 싱크탱크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미국 싱크탱크의 젊은 직원을 초청해 일본의 문화, 전통, 역사를 접하게 하죠. 일본어를 공부하는 미국 학생에게 일본 연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해요. 일본 우호 세력을 만드는 거죠. 미국이 독도 영토 분쟁과 역사 문제에서 점점 일본 쪽에 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워싱턴 로비력은 일본은 고사하고 인도나 동남아 국가들보다도 한참 아랫길입니다.”

▷실제 미·일 관계는 어떻습니까.

“지난 3년은 한마디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 오명을 벗고 미국의 당당한 군사 파트너로 화려하게 재등장한 시기로 규정할 수 있어요.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막기 위해 요청한 일본의 재무장을 아베 신조 총리가 전격 받아들인 결과죠. 대신 일본은 재무장 재원 마련을 위해 엔화를 무한정 공급하는 ‘아베노믹스’를 용인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했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이 일본의 무지막지한 엔화 약세는 포용하면서도 한국의 소규모 환율 개입은 엄격히 견제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라고 봅니다.”

▷일본의 재무장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 문제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보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사안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놀랄 정도로 그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없어요. 한국이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대화 채널을 끊고 중국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서먹해진 사이,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제쳐 놓고 일사천리로 재무장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했습니다. 어쩌면 일본이 위안부 문제로 한국의 감정을 격하게 만든 것도 한국을 따돌리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대응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합니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이상기류가 있다고 보는군요.

“미국이 중국의 ‘군사적 굴기’를 경계해 아시아 복귀 정책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한국이 지난 몇 년간 중국에 빠르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미국을 분명히 당혹하게 했을 것입니다. 한국 공군의 주요 장비가 모두 미국산인데도 입찰을 붙여 유럽의 에어버스 공중 급유기를 들여오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의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도 미국 처지에서는 이해가 안 됐을 것입니다.”

▷사드 배치는 외교적으로, 대내적으로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전략 부재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봅니다. 사드 배치 문제는 조용히 처리할 군사기밀 사항입니다. 하지만 ‘협상 불가능한 비공개 군사·보안 문제’를 ‘협상 가능한 공개적 외교 이슈’로 잘못 정의한 데서 혼란이 야기됐습니다. 처음부터 안보 문제 관점에서, 북핵이 존재하고 남한이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고 있으며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다는 논리를 중국에 차분히 설명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안보 문제임에도 국방부가 외교부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앞으로 군사문제는 국방부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는 방향으로 외교안보 당국 내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합니다.”

▷앞으로 대미, 대중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관심입니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자는 ‘경중안미(經中安美)’ 전략을 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경중안미는 우리 입장에서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 나라 모두로부터 비난받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게 돼 국내 경제에 다소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한·미 동맹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인 한국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는 미국과의 군사동맹입니다. 안보를 경제보다 우선시해야 합니다.”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경제관료 시각으로 '외교 민낯' 다뤄


[월요인터뷰] 최중경 "원화 환율 문제삼는 미국, 아베노믹스는 용인…한국외교 실패 탓"
지난 19일 출간된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사진)는 한국 외교의 ‘민낯’을 다룬 책이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실리가 중요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했다. 저자가 책 머리말에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나 불편한 사실에 관한 언급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한다”고 미리 언급할 정도로 현장에서 경험한 실패 사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책의 부제는 ‘21세기 새로운 국가 대전략’이다. 그만큼 책은 새로운 국가 전략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저자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교·안보·산업·경제·환율 등 다방면에 걸친 전략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정책당국자들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높다.

책은 고구려와 구한말의 조선은 물론이고 로마에 패망한 카르타고,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 등 국제 정세를 외면해 몰락의 길을 걸은 동서고금의 역사도 흥미롭게 들려준다. 구한말 조선왕조의 멸망도 국가 전략 부재 탓으로 본다. 만일 조선이 1871년 신미양요나 1885년 거문도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세계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 영국과 어떤 형태로든 연결고리를 맺어 이들을 통해 일본을 견제하는 국가 전략 수립에 성공했다면 독립국가로 존속했을 것이라는 역사적 가정도 한다. 저자는 “지금도 치밀한 국가 생존 전략 수립에 실패한다면 19세기 말 조선의 치욕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중경 회장은

옛 재무부 출신 정통 경제관료. 외환정책 실무를 총괄하던 국제금융국장 시절 ‘최틀러(최중경+히틀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고환율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행정고시(22회) 합격 전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붙어 삼일회계법인에서 잠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올해 6월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1956년 경기 화성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기획재정부 1차관 △주(駐)필리핀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지식경제부 장관 △미국 헤리티지재단 방문연구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