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도 뇌 구조를 닮은 반도체 개발에 나선다. 뉴로모픽(neuromorphic·뇌 신경 모방)이라고 불리는 차세대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와 비교해 성능이 뛰어나면서 전력 소모량이 적어 미래 반도체 시장을 좌우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SK하이닉스 '인간 뇌 닮은 반도체' 만든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스탠퍼드대와 ‘인공신경망 반도체 소자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체결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세계 2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램리서치와 재료업체 버슘머티리얼즈도 함께 참여한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30일 뉴로모픽 칩 제작을 위한 아키텍처(설계 구조)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뉴로모픽 칩의 기능은 사람의 사고 과정과 비슷하다. 지금 반도체는 저장 기능과 연산 기능으로 나뉜다. 각각의 반도체가 정해진 용도에 따라 만들어지고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뉴로모픽 칩은 하나의 반도체가 저장과 연산은 물론 인식, 패턴 분석까지 한다. 반도체 구조도 트랜지스터나 셀이 아니라 각종 신경 기능을 담당하는 뉴런과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로 구성된다. 사람이 기억하는 원리처럼 신호를 주고받는 데 따른 잔상으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이 때문에 패턴을 인지해 이미지와 소리를 인식하는 기능이 기존 반도체보다 좋다.

2012년 구글이 고양이를 다른 동물 사진과 구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데 1만6000개의 중앙처리장치(CPU)가 필요했다. 뉴로모픽 칩이 개발되면 손톱 크기의 칩 하나로 똑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하나의 뉴런 안에서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므로 반도체 간 전하 이동이 크게 줄어 전력 소비는 1억분의 1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지금 속도로 반도체가 늘면 2040년에는 이를 구동하기 위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화력발전소 1억개가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며 “소요 전력이 적은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 절실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협약을 통해 뉴로모픽 칩의 시냅스 소자를 개발할 예정이다. 전하 유입 여부를 통해 0과 1을 구분하는 기존의 반도체 입력 방법 대신 전압 크기에 따라 다양한 신호를 저장할 수 있는 유기물질 강유전체를 사용한다. 성공하면 1945년 수학자 폰 노이만이 발명한 이후 바뀌지 않고 있는 디지털 방식 반도체 작동원리의 일부가 바뀔 수 있다.

삼성전자는 뉴로모픽 칩의 주요 아키텍처로 사용되고 있는 인텔의 x86을 대체할 새로운 아키텍처를 개발하고 있다. 손영권 삼성전략혁신센터장(사장)이 중심이다. x86은 저장장치 내 통로를 확장하기 어려운 데다 데이터를 직렬로만 소통할 수 있어 저장과 출력을 동시에 하는 등 병렬 기능 수행이 핵심인 뉴로모픽 칩의 기능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손 센터장은 최근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래의 컴퓨터는 사람의 뇌 형태를 따라가야 한다”며 “대용량 저장장치에 연산 및 네트워크 기능이 결합된 칩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IBM이 뉴로모픽 칩인 트루노스를 선보였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병렬 반도체 칩 아이리스를 내놨고, 중국 칭화대도 트루노스와 비슷한 구조의 칩 ‘톈즈’를 개발 중이다. 퀄컴은 뉴로모픽 칩을 스마트폰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해당 프로젝트에 1억유로를 투자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