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1828~1882)는 신화를 비롯해 성서, 문학작품에서 얻은 소재를 신비하면서도 육감적인 색채로 묘사했다. 1844년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등과 예술단체 ‘라파엘 전파(前派)’를 결성한 그는 당시 ‘감상적이고 맥빠진 예술’에 반대하며 자연에서 겸허하게 배우는 예술을 표방했다. 말년에는 시작(詩作)에도 관심을 보였다.

1868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유대 신화에 등장하는 아담의 첫 부인 릴리트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정열적인 색채로 펼친 명작이다. 릴리트를 욕구에 허기진 ‘성적 괴물’로 묘사해 팜파탈의 전형을 보여준다. 거울을 보며 풍성한 머리카락을 빗질하는 여인의 얼굴에서는 순종적이고 정숙한 아내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야릇한 욕정만이 느껴진다. 넓은 어깨와 좁은 이마, 각진 턱 역시 아기를 낳지 않고 영원히 허기를 느끼며 사내를 갈구하는 욕망의 또 다른 은유인지도 모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