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주 약세, IPO시장에 쓰나미
공모주 투자 열기가 급작스레 얼어붙고 있다. 공모가를 크게 낮춘 업체마저 모집금액을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정성보다 성장성을 앞세운 중소형주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에 대한 투자자의 평가가 달라진 결과로 해석했다.

◆공모가 낮춰도 ‘청약 미달’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해 이달 일반청약을 한 기업 세 곳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중소형주 약세, IPO시장에 쓰나미
운동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인 화승엔터프라이즈가 전날 마감한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0.43 대 1에 그쳤다. 전체 1176억원어치 공모 주식의 20%인 156만여주를 일반투자자에게 배정했지만 67만여주만 청약이 들어왔다. 2012년 CJ헬로비전(0.26 대 1) 이후 최저 경쟁률이다.

이달 초 일반청약을 한 모두투어리츠의 청약 경쟁률도 0.98 대 1에 그쳐 모집금액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베트남에서 전력케이블을 생산하는 LS전선아시아는 2.98 대 1로 그나마 선방했지만 올 상반기 5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평균 청약 경쟁률 244 대 1과 비교하면 부진한 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상장 후 성적은 더욱 안 좋다. LS전선아시아 주가는 지난 22일 첫 거래에서 공모가 8000원 대비 20% 이상 떨어진 6350원에 마감했다. 주가는 LS전선아시아가 당초 희망한 공모가격 1만~1만1500원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모두투어리츠도 같은 날 첫 거래에서 공모가 대비 12.8% 하락했다. 통상 평가가치보다 20~30% 할인해 파는 공모주 가격이 첫날부터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인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한 자산운용사 공모주 펀드매니저는 “투자자들이 높은 성장성을 내세운 중소형주의 밸류에이션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뚜렷한 신호”라며 “앞으로 있을 기업공개(IPO) 주식은 물론 이미 침체된 중소형주 시장 투자심리도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형 가치주로 수요 쏠림

국내 중소형주는 올 들어 대형주에 비해 부진한 흐름을 나타냈다. 미국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우려 등 불확실성 탓에 투자자들이 중소형주를 팔고 자산가치 대비 저평가된 대형주로 옮겨타고 있어서다.

이 중 중형주의 부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100개사 주가를 추종하는 대형주지수는 22일 현재 올해 초 대비 8.4% 상승했다. 반면 시가총액 101~300위 중형주지수는 1.0% 하락했다. 이 같은 격차는 하반기 들어 더욱 커졌다.

문수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주식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3개월간 성장보다 가치에 주목하는 투자 흐름이 나타나면서 저평가된 대형주 펀드 수익률이 중소형주를 웃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지난달까지 나타난 삼성전자 주가의 강한 흐름, 국민연금의 지수(대형주) 중심 운용전략, 주로 대형주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순매수 추세도 중소형주 소외 현상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올해 말로 예고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중소형주 소외 현상이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국면에서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큰 중소형주보다 안정적인 대형주에 관심을 둘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태호/나수지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