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에 나선 삼성 이재용] 시장도 반긴 '이재용 등판'…승부구는 (1)공격투자 (2)사업재편 (3)혁신
“미래 성장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핵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재편, 기업문화 혁신 등이 추진돼야 하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이사 선임과 공식 경영 참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삼성전자 이사회가 지난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등기이사로 추천하며 밝힌 사유다. 투자, 사업재편, 기업문화 혁신을 위해 오너의 책임 경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들 3대 과제는 이 부회장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온 현안이다. 오너가 전면에 나서 결단해야 더 효율적일 수 있는 과제다.

(1)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 나온다. 최대 라이벌인 애플마저 삼성에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을 사서 쓰는 이유다.

이들 부품은 ‘타이밍 산업’이다. 시장이 원하는 시점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고 양산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대신 조금이라도 늦으면 적자가 불가피하다. 최근 반도체는 평면에서 3차원(3D)으로 진화하고 미세공정도 10나노미터대로 접어들었다. 디스플레이는 10세대 이상 초대형이 등장하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가 대세로 떠올랐다. 이런 부품 공장은 하나를 짓는 데 10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이런 초대형 투자엔 오너의 결정이 필수적이다.

삼성전자는 경쟁사보다 2년 앞선 2014년부터 3D 낸드플래시를 양산 중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 기술력의 인텔이 새로 뛰어들었고, 도시바 마이크론 등도 양산을 시작했다. 게다가 중국은 ‘중국제조2025’ 계획에 따라 반도체 자급을 위해 국가 돈을 퍼붓고 있다. 삼성은 OLED 패널에선 2007년 세계 최초 양산을 시작해 스마트폰용 OLED 패널 시장 점유율이 99%에 달한다. 이런 경쟁력 우위를 지키려면 과감한 투자 판단이 필수다. 삼성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26조원 이상을 설비투자하기로 하고 이 부회장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2)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재편

삼성은 2013년 말부터 사업 재편을 시작했다. 화학 방산 등 비(非)주력 계열사를 정리하고 대신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력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수많은 해외 업체를 인수합병(M&A)했다. 여기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바탕에 깔렸다.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서도 미국 빌트인 가전 시장을 뚫기 위해 럭셔리 가전회사 데이코를 사들였고, 세계 10위 규모의 프린터사업부는 미국 HP에 매각하기로 했다.

사업 재편엔 이 부회장 중심의 그룹 지배구조를 다지겠다는 의도도 들어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와 삼성증권, 삼성카드의 지분을 인수해 금융지주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 9월엔 옛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 합병으로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이 출범했다. 증권가에선 삼성물산 및 삼성전자의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의 분할, 그리고 이들 지주회사 간 합병을 통해 그룹 지주회사가 탄생할 것으로 관측한다. 다만 야당 중심으로 삼성의 승계를 어렵게 하는 상법개정안 등 수십개 법안이 발의돼 어려움이 예상된다.

(3) 기업문화 혁신

삼성은 관리, 의전에 강한 기업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아무 때나 사장들에게 전화해 묻는다. 수시로 문자메시지도 주고받는다. 해외 출장이 잦지만 전용기는 팔아버리고 수행비서 없이 홀로 다닌다. 미래전략실장을 통해 사장단과 소통하고 지시하던 이건희 삼성 회장과는 다르다.

이 부회장이 솔선수범해 격식, 의전을 파괴하는 건 기업문화를 젊고 창의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의 경쟁자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하드웨어 기반으로 커온 삼성이 이들과 경쟁하려면 경직된 문화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6월 ‘스타트업 삼성 인사혁신안’을 내놓은 건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 내년 3월부터 직원 직급을 기존 5단계에서 4단계로 축소하고 4~5년인 최소 승진 연한을 줄이면 능력 있는 젊은 직원을 쉽게 팀장, 그룹장으로 발탁해 쓸 수 있게 된다. 이런 혁신안이 이른 시일 내 뿌리내리려면 오너의 집중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기업문화 혁신은 최고경영진 인사와도 맞물려 있다. 경영진이 젊어져야 실질적 변화가 가능해서다. 삼성은 지난 2년간 사실상 사장단 인사를 하지 않았다. 연말 정기인사 때 몇 명 바꾸긴 했지만, 임원 경질 폭에 비하면 미미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려 할 때 큰 폭의 인사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