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삼양라면이 처음 나왔다. 이후 20년 가까이 삼양이 라면시장을 지배했다. 1980년대 초 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강력한 도전자 농심이 치고 올라왔다. 1982년 너구리,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양을 압박했다. 1986년 ‘도전자’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제품이 나왔다. 신라면이었다. 신라면은 이후 30년간 라면시장을 지배했다. 농심의 점유율은 최고 80%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농심의 점유율은 하락세다. 진짬뽕을 앞세운 오뚜기가 치고 올라오고 있다. 농심의 점유율은 5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신(辛)라면의 시대’에서 ‘신(新)라면 전쟁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심, 시장 점유율 50%로

농심의 라면시장 점유율은 지난달 53.8%였다. 작년 말과 비교하면 7.6%포인트 떨어졌다. 1997년 농심이 사업보고서에 점유율 정보를 공개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처음 점유율 50%를 넘긴 1988년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라면의 국내 매출은 2013년 4800억원에서 지난해 4450억원으로 7.3% 줄었다.

농심을 위협하는 회사는 오뚜기다. 진짬뽕을 앞세운 오뚜기의 시장 점유율은 23.7%로 높아졌다. 오뚜기의 시장 점유율은 2014년 16.3%, 2015년 18.3%였다. 농심이 잃어버린 시장을 오뚜기가 차지한 셈이다.

오뚜기의 전략은 마케팅과 신제품이었다. 메이저리거 류현진을 앞세워 대대적 마케팅에 나선 오뚜기는 진라면의 인지도를 높여갔다. 작년에는 진짬뽕을 내놨다.

짬뽕라면은 원래 있었다. 농심의 오징어짬뽕이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뚜기는 지난해 여름 짜장면 열풍에서 힌트를 얻었다. ‘짜장면이 유행하면 짬뽕도 많이 팔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중국음식점에서 먹는 짬뽕과 가장 가까운 맛을 내기 위해 불맛을 강화했다. 건더기도 많이 넣었다. 일반 짬뽕의 3분의 1 가격인 1370원에 먹을 수 있는 ‘가성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강조한 것도 효과가 컸다. 오뚜기는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달 볶음진짬뽕을 내놓았다. 국물 없는 짬뽕라면 시장도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신제품의 효과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 2분기 오뚜기 매출은 4880억원, 영업이익은 405억원으로 각각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7.1%, 9.0% 증가했다. 농심의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272억원과 124억원으로 0.4%, 48.7% 줄었다. 증권가에서는 ‘어닝 쇼크’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해 4년 만에 영업흑자로 돌아선 여름 라면시장의 강자 팔도도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올해 초 양을 늘린 비빔면 제품을 선보인 데 이어 김치도시락을 내놓았다. 삼양도 불닭볶음탕면을 내놓고 매운맛 시장 공략에 나섰다.

혁신에 무딘 1등의 함정

농심이 오뚜기에 점유율을 내준 과정은 과거 삼양이 농심에 공격당하던 과정과 비슷하다. 1등과 다른 혁신적 제품이 무기였다. 삼양이 닭고기로 라면 스프를 만들 때 농심은 소고기 스프로 도전했다. 이어 면발이 굵은 너구리를 내놓으면서 라면시장에서도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1983년 안성탕면, 이듬해 짜파게티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1985년 점유율 1등이 된 뒤 내놓은 신라면은 농심의 혁신 DNA를 상징하는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혁신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1위의 함정’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심은 신라면 외에 많은 1등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짜장라면에서는 짜파게티, 소고기 라면에서는 안성탕면, 두꺼운 면발 라면으로는 너구리가 여전히 1위다. 1등 브랜드를 가진 것이 독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심이 시장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신라면 이후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고 할만한 제품은 지난해 출시한 짜왕이 유일하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지난해 굵은 면발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했다”며 “올 상반기엔 경쟁 심화로 마케팅 비용이 증가해 일시적으로 영업이익이 하락했지만 하반기에 신제품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회복할 것” 이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