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파리로 건너간 신 화백은 색점과 색선, 얼룩 등으로 채색한 캔버스를 1~2㎝씩 오린 뒤 그림틀에 엮어 그물망을 제작하고 그 위에 다시 색을 칠한 ‘조각 같은 그림’이라는 독자적인 회화 양식을 개척했다. 그는 파리 화단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1983년 “나는 화폭에 무엇을 갖다놓는 문제에 앞서 장소를 중시한다. 갖다놓고 싶은 것은 대체로 3차원적인 형상인데 놓일 곳은 캔버스나 종이 같은 2차원적 평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상반되는 두 개념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데 모든 것을 건 이유다.
생전 신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마대 특유의 재질을 그대로 살리면서 여백, 음영, 직선의 이미지를 통해 실상과 허상을 교차시켰기 때문에 서양의 미니멀리즘 회화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설명했다.
지난 18일부터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신성희 개인전’은 그의 이런 단색화 정신을 오랜만에 돌아볼 수 있는 자리다. ‘표면과 이면’을 주제로 1970년대 중반부터 1982년까지 마대에 마대와 캔버스 뒷면을 그린 30여점이 걸렸다. 향토색 짙은 한국 특유의 색감을 담아 고요하고 명상적인 회화의 느낌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황토색 마대 화면에 검은 선 또는 검은빛이 묽게 희석된 붓자국과 이 붓자국 사이로 미세한 틈새가 드러난 작품들에서는 ‘직관적 공감각’을 느낄 수 있다. 신 화백은 젊은 시절 “마대 색은 우리 강산의 색깔이며 이 자연색을 통해 동양의 사상, 순환의 세계까지도 엿볼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누런 마대 색의 무한한 세계가 별빛처럼 빛나는 동양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마대 작업을 회화로 간주했다. 마대를 통해 자신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붓질을 추가해 회화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나아가 황토색 짙은 마대로 아름다운 사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술행위 자체를 담아내려 했다. 그의 마대 작업은 미술 행위를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동양정신의 세계화를 열망하는 우리 처지와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신 화백은 마대로 ‘회화란 무엇인가’를 증명하려 했고, 미완성의 과업을 남긴 채 삶을 마감했다. 전시는 다음달 23일까지. (02)2287-359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