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역할을 해야 하는 연구원들이 대거 나가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KDI 출신인 A교수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DI는 연구원들이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입사 후 5~6년 정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데 연구소가 세종시로 옮기고 나서 해당 연차의 연구원이 상당수 이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A교수는 본인의 이름은 물론 이직 연도와 대학, KDI 근무기간 등 신상 관련 정보를 일체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A교수는 “세종시 이전 직후 KDI를 떠난 연구원 중 상당수는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을 떠날 수 없어 그만둔 경우도 있지만 KDI의 위상 하락이 연구원의 이직을 가속화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은 내용을 발표하면 해당 부처가 바로 경고를 보내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KDI에 계속 근무해야 하는지 회의하는 연구원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A교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KDI는 정부에 할 말을 했고 필요하면 청와대에 직접 보고도 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못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책연구기관은 정부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설립됐다”며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정부가 바로 잡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A교수는 “큰 흐름에서 볼 때 국책연구기관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것도 KDI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획재정부는 미래 중장기 대책은 자신들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해 KDI에는 경제정책에 관한 ‘큰 그림’이나 중장기 전략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각종 현안에 대한 단기 대안을 제시하거나 심한 경우 정부가 꾸린 각종 태스크포스(TF)의 보조자 역할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고 했다.

A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을 총괄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2005년 출범한 직후 그곳 사람들이 KDI에 처음 와 ‘이제 계획경제 시대도 끝났는데 KDI가 왜 필요하냐’고 해 연구원들이 분개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학계로 와 보니 ‘기재부가 KDI는 싫어하고 정부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잘 내주는 B국책연구기관을 훨씬 선호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더라”고도 했다.

KDI의 운영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특히 원장 선임 과정이 불투명한 것에 연구원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예전에는 KDI가 처우에서도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최근 다른 연구기관과 큰 차이가 없어졌다”며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연구원들의 불만”이라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