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산나이스(회장 엄태응·57)는 64년의 역사를 지닌 의약품 전문 유통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일본 굴지의 의약품 유통업체 (주)스즈켄으로부터 520억원의 자본을 유치했다. 업무 및 자본 제휴를 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물류 및 영업망 확충, 취급 품목 확대 등 대대적인 변화에 나서고 있다. 이런 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엄태응 회장을 서울 장지동 서울복합물류단지에 있는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나고야에 본사를 둔 스즈켄그룹은 일본 굴지의 의약품 유통 및 제약그룹이다. 약 60개의 자회사와 1만6000여명의 종업원을 둔 업체로 연매출은 약 24조원(2조2200억엔, 2015년도 회계기준)에 이른다. 의료기기, 건강식품 등도 취급하지만 주력 품목은 의약품이다.

이 회사가 지난 6월 한국 복산나이스에 520억원을 출자해 지분 45%를 획득했다. 의약품 유통업체에 투자한 돈으로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내용이 일본경제신문과 일간공업신문을 비롯한 일본 주요 신문 여섯 곳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 회사가 2년여 동안 한국 시장을 조사하고 그중 복산나이스를 파트너로 선택해 출자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한국 의약품 유통시장이 큰 변혁기에 있다는 것이다. 엄 회장은 “한국 내 제약회사는 약 400개에 이르고 의약품 유통업체는 2000여곳에 달하지만 앞으로 의약품 유통업은 큰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약회사에서 제조된 의약품이 공급돼야 하는 병원, 약국, 보건소 등의 요양기관은 전국에 수만곳에 달한다. 일반 공산품과 달리 의약품은 안정적으로 적시에 공급해야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더욱 효율적인 유통 서비스가 요구된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 역시 유통 효율화를 목적으로 업계 재편이 이뤄졌다.

이들은 단순한 약품 공급에서 한 걸음 나아가 수요처인 요양기관과 제약업체 간 소통창구 역할도 해야 한다. 약의 효능과 부작용 등 의약품의 정확한 정보를 요양기관에 전달해야 한다. 엄 회장은 “그런 면에서 의약품 유통은 인체의 혈관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1년 일본 센다이지역 대지진 직후 일본 의약 유통사의 신속 정확한 의약품 전달이 재난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복산나이스는 이번 제휴를 토대로 몇가지 측면에서 영역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첫째, 선진 물류 및 영업망 확충이다. 올해 창립 64년을 맞은 복산나이스(창업 당시 사명은 복산약품)는 국내 굴지의 의약품 유통업체 중 하나다. 작년 매출은 약 5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영업망은 그동안 주로 부산 울산 경남에 국한돼 있었다.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우선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단지에 서울지점을 개설하고 경기 광주에 4977㎡ 규모의 수도권 물류시설을 갖췄다. 본격적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수도권을 시작으로 전국 유통 서비스망을 확충할 계획이다.

둘째, 취급 품목 확대다. 이 회사는 올해 5월 복산약품 복산팜 복산나이스팜 등 3개사를 복산나이스팜으로 합병한 뒤 사명을 복산나이스로 바꿨다. 약품을 뜻하는 ‘팜’을 떼어낸 것은 사업 영역 확대 의지를 담고 있다. 엄 회장은 “의료기기 백신 진단시약 동물약품 건강식품 등 다양한 헬스케어 제품뿐 아니라 일본에서 주목받는 우수 상품도 포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 국민의 소득과 의식 수준이 높아져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며 “해외 여행을 통해 구매하는 글로벌 헬스케어 제품을 국내에 소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변신에 나서는 것은 복잡하고 음성적인 유통 기능 대신 경쟁력 있는 유통업체 체제로 시장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엄 회장은 수년 전부터 복산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세웠다.

그는 “제약회사가 종전처럼 수백개 유통업체와 거래하면 의약품의 효과적인 전달이 어렵고 비용 절감에도 한계가 있다”며 “유통업체와 요양기관이 갖고 있는 재고 파악이 어려워 과잉 생산과 품절이 반복되고 이는 결국 과잉 재고의 폐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제약회사의 원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엄태응 복산나이스 회장이 스즈켄그룹과 업무 및 자본 제휴를 맺은 뒤 미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엄태응 복산나이스 회장이 스즈켄그룹과 업무 및 자본 제휴를 맺은 뒤 미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유통 선진화는 건강보험재정 건전화와 연결되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 부담 경감으로 이어진다. 그는 “선진 유통화로 어느 지역에서도 같은 수준의 유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 의료인과 환자에게 공헌하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변화에 대응해 “2007년 의약 유통업계 최초로 공정경쟁연합회에 가입하고 준법 윤리규정을 제정, 시행해 투명 거래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복산나이스는 2012년 창립 60주년을 맞아 ‘제2의 창업’을 선포하고 ‘WIN2020’을 선포했다. 2020년까지 매출 1조원 달성과 선진 유통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중장기 전략이다.

복산나이스의 또 다른 경영 방침은 사회공헌이다. 창업자인 엄상주 명예회장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6·25전쟁 중 부산에서 의약품 유통을 시작한 국내 의약품 유통의 1세대다. 그는 기업 운영을 통해 얻은 수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며 그동안 고향인 하동에 기부 활동을 해왔다. 하동읍에 있는 중증장애인생활시설 ‘섬진강 사랑의 집’에 각종 물품 및 차량 장비 등을 10여 차례나 기증했다.

저소득 아동, 홀몸노인, 장애인 등 어려운 계층에 관심이 많아 이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2008년에는 ‘여강 엄상주복지회’를 창립해 3억원을 기탁했으며, 보금자리주택을 지어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가정에 기증하고 있다. 올해 6월까지 기증한 주택이 네 채에 이른다. 2세 경영자인 엄 회장은 1997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그 역시 부친의 사회공헌 정신을 계승해 부산동부 푸른장산 장학회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엄 회장은 “헬스케어사업은 앞으로도 대폭 성장할 사업 분야”라며 “복산나이스의 노하우와 새로 입사한 젊은이들의 열정을 융합해 선진 유통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