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염리동 주택가. 염리초등학교 주변 신축 중인 한 건물 앞에 학부모와 주민 1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학교 앞 사후면세점이 웬말이냐”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전수아 염리초교 학부모회 운영위원장은 “주민들의 반대 서명에도 불구하고 사후면세점 건축을 추진하고 있다”며 “아이들 안전을 지키기 위해 3주 동안 매일 공사 현장에 나와 시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포구 상암동에서 이달 초 영업을 시작한 한 사후면세점 앞에서는 상암초교 학부모들이 2주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상암초 학부모회 관계자는 “면세점과 학교 사이 거리가 200m에 불과해 학생들 통학에 방해가 되는 데다 관광버스가 학교 앞에서 불법 유턴을 일삼아 사고 우려도 있다”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유커)을 겨냥한 사후면세점이 우후죽순처럼 늘면서 곳곳에서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사후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산 물건의 세금 일부(부가가치세·개별소비세)를 출국 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 매장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전국 사후면세점은 2011년 2071곳에서 지난해 1만2077곳으로 6배로 늘었다. 올해부터 외국인 관광객은 공항이 아니라 사후면세점에서도 환급받을 수 있어 사후면세점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주민들은 안전사고 위험과 매연 등 주거 환경 악화를 이유로 입점에 반대하고 있다. 사후면세점이 많은 서울 마포구·서대문구에서는 학부모들이 직접 시위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유커를 태운 관광버스가 일반 주택가 도로변까지 진을 치면서 각종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후면세점 앞 도로에는 관광버스 불법 주차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관내에 40여곳의 사후면세점이 있는 마포구는 올해 상반기에만 9274건의 관광버스 불법 주차를 적발했다. 주차단속팀 관계자는 “과태료(5만원)가 적은 데다 대부분 면세점에서 대신 납부해주고 있어 단속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주민 반대로 면세점 건축이 잠정 중단된 곳도 있다. 서대문구 연희동에서는 지난해 10월 지상 4층 규모로 면세점 건축허가를 받은 건축주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면세점과 가까운 연희초교 학부모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서대문구청 등에서 130회 넘게 입점 반대 시위를 벌였다.

법적으로는 주민들이 사후면세점 건축을 막을 수 없다. 특허제로 운영하는 공항·시내 면세점과 달리 사후면세점은 지역 세무서에 신고만 하면 영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을 중단한 연희동 면세점 건축주인 SA홀딩스는 “땅주인으로부터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털어놨다.

정치권에서는 사후면세점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5일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는 사후면세점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학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도 “일정 규모를 넘는 사후면세점은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규제 필요성을 제기했다.

관광객 유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담당자는 “일본에는 사후면세점이 3만여개나 있다”며 “일본과 관광객 유치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사후면세점 지정 요건을 강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