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안방보험·중동 국부펀드,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
하나금융그룹이 서울 을지로에 있는 옛 외환은행 본점빌딩 매각을 추진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 외부 충격에 대비해 미리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취지다.
5일 금융권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옛 외환은행 빌딩을 팔기로 하고 인수 후보자를 대상으로 의사를 묻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여파로 선제적인 자산 운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옛 외환은행 빌딩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 용인 KEB하나은행 연수원도 매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옛 외환은행 빌딩의 장부가는 약 4600억원이며 하나금융은 예상 매각가를 최소 1조원 이상으로 잡고 있다. 지하 3층, 지상 24층인 옛 외환은행 본점은 명동지구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76년 내무부 빌딩을 허물고 지은 역사적인 건물이다. 1981년 완공돼 35년간 외환은행 본점으로 활용됐고 지금은 하나금융과 KEB하나은행 본점이 입주해있다. 대지는 1만1742㎡로 을지로와 명동 일대 오피스빌딩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하나금융과 KEB하나은행은 빌딩 매각 후 내년 7월께 재건축이 끝나는 을지로 하나은행빌딩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하나금융그룹이 서울 을지로의 옛 외환은행 본점빌딩 매각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한 건 4월부터다. 그전까지는 매각하는 것보다 관계사 등에 임대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해 하나은행과 합병한 외환은행 직원들의 이 빌딩에 대한 애착도 감안했다.
하지만 조선·해운 등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예상치 못한 손실부담이 생기자 매각 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대우조선해양 부실 여파가 컸다. KEB하나은행의 대우조선 여신은 약 8300억원이다. 이전까지 ‘정상’으로 분류했던 대우조선 여신건전성 분류를 지난달 말 ‘요주의’로 낮추면서 580억원 상당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다. 추가적인 부실이 발생할 경우 충당금 적립규모는 더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 더해 KEB하나은행은 현대중공업 주채권은행도 맡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대한 KEB하나은행의 여신은 1조3382억원에 달한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STX조선, 대우조선 등 조선업 부실이 잇따라 터지면서 불확실성에 대비해 캐시(현금)를 확보해 둘 필요성이 커졌다”고 귀띔했다.
관심은 매물로 나온 옛 외환은행 빌딩을 누가 살지에 쏠린다. 국내 랜드마크 빌딩 매입을 추진 중인 중국 안방보험이나 중동 국부펀드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건물을 허물고 빌딩을 신축하는 형태로 진행하면 오피스빌딩뿐 아니라 호텔, 면세점 등 다양한 건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매각가다. 하나금융그룹이 희망하는 가격은 최소 1조원이다. 4600억원가량인 장부가의 두 배 이상이다. 반면 시장의 예상 매매가는 7000억원 안팎 수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연초 KB금융에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가격 때문에 무산됐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선 하나금융의 옛 외환은행 빌딩 매각 추진을 계기로 다른 시중은행들도 선제적 유동성 확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 조선·해운 구조조정의 충격이 큰 은행들이 유휴 부동산 매각 등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이다.
좌동욱/이태명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