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다국적 문어발 기업 가우스전자에서 벌어지는 웃픈 현실 직장인 이야기.’ 네이버 만화의 인기 작품 ‘가우스전자’에 대한 소개글이다. 2011년 6월부터 시작한 연재는 시즌 1, 2를 지나 현재 시즌 3가 이어지고 있다. 매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밤 11시면 ‘칼같이’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 온다.

사내 커플인 ‘이상식’과 ‘차나래’, 성형을 너무 많이 해 얼굴 표정이 없어진 ‘성형미’, 가우스전자의 라이벌 파워그룹 회장의 아들이지만 신분을 숨기고 가우스전자에서 근무 중인 ‘백마탄’과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를 자랑하는 ‘건강미’, 악덕 상사의 전형 ‘기성남’과 기러기 아빠이자 언제나 선후배들에게 치이는 ‘차와와’ 등 매우 다양한 인물군상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회마다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며 평점 9점대 후반을 꾸준히 지키고 있는 ‘가우스전자’. 이 작품을 그리는 웹툰 작가의 이름이 재밌다. 곽백수(43·사진)다. 본명이다. 하지만 이 이름으로 대기업의 일상을 그린다는 사실 때문인지 예명으로 오해를 많이 받는다.

“일백 백(百)에 물가 수(洙)자를 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백수(白手)라고 오해해요. 제가 예명을 그렇게 ‘구리게’ 짓겠어요?” 지난달 15일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곽씨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또 “어릴 땐 백수라는 말이 지금처럼 유행하지 않아 이름 때문에 놀림받은 적이 별로 없는데 가우스전자를 연재하면서 놀림감이 되거나 예명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덤덤하고 빠른 말투, 뭔가 심드렁한 듯 초연한 듯 여유로운 태도, 은근한 낯가림의 장벽이 느껴졌다.

‘백수’가 대기업을 그리기까지

그는 정작 한 번도 회사에 다닌 적이 없다.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느냐고 물으니 “웹서핑과 뉴스 읽기를 통해 소재를 찾는다”며 “작정만 하면 직장을 소재로 한 글과 기사를 엄청나게 많이 찾을 수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이라는 공간을 소재로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다양한 사람이 한 공간에서 일정한 시스템 아래 지내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웹툰 ‘가우스전자’ 캐릭터
웹툰 ‘가우스전자’ 캐릭터
“원래 ‘가우스전자’는 제 예전 작품 ‘트라우마’에서 ‘가우스그룹’이란 이름으로 자주 나왔습니다. 초창기에 SF만화에 처음 등장시킨 회사 이름이었죠. 가우스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째는 발음하기 쉬운 제목을 원했어요. 제목에 받침이 있는 글자를 안 붙입니다. 발음이 어려우면 기억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둘째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을 찾고 싶었습니다. 가우스는 유명한 수학자잖아요. ‘우라늄전자’라 하려다가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때문에 그건 포기했습니다.”

이른바 ‘곽백수 천재설’, ‘미리 작성한 분량 수백개’ 등 정확한 업데이트 시간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나온 여러 ‘음모론’에 대해서는 “에이, 그런 건 없다”고 손사래쳤다. 그는 “배경화면 작업을 돕는 어시스턴트 한 명과 함께 주 5일 하루 8시간씩 일한다”며 “다른 직장인들도 같은 시간에 출근해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내 직업에 대해선 그렇게 신기하게 물어보느냐”고 되물었다. “‘칼업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다들 ‘칼출근’ 하잖아요. 돈 벌어야 하니까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저도 똑같아요. 저 역시 열네 살짜리 딸과 열한 살짜리 아들의 아버지입니다. 무슨 거창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함께 즐기는 거죠.”

곽씨가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 때다. 관동대 경영학과 91학번인 그는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학점이 1~2점대에 불과했다고 털어놨다. “학점이 1.605점일 때도 있었어요. 신기한 것은 F학점은 하나도 없었다는 거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지는 않았지만 책은 진짜 열심히 읽었어요. 다양한 분야의 책 읽는 걸 원래 좋아하기도 했고, 똑똑해 보이고 싶었으니까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뒤 스스로의 생계가 걱정됐다. 그는 “아버지가 사업을 했는데 늘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만화야말로 평생 기술이라 생각했기에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만화계의 스타를 꿈꿨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만화 그리는 걸 별로 반대하지 않았어요. 아, 다들 이 부분에서 뭔가 좀 드라마틱한 얘기를 많이 하죠? 그런데 저는 인생에서 그런 부분이 별로 없어서 말이죠. 인터뷰가 재미 없어서 어떻게 하죠?”

스타 만화가가 되는 길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곽씨는 25세부터 32세까지 7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다. 그러다 2003년 1월부터 스포츠서울에 연재를 시작한 ‘트라우마’가 히트하면서 인터넷상에 서서히 그의 작품이 퍼져 나갔다. “원래는 SF 분야를 그리려고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상 개그 쪽으로 갔죠. 솔직히 운이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창의력은 근육처럼 단련 필요

곽씨는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며 “창의력은 근육처럼 단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작가들 중 가끔씩 건강 문제 또는 소재 고갈을 호소하며 갑자기 연재를 중단할 때가 있죠? 사실 그건 작가 자신이 너무 지쳐서 그런 거예요. 그걸 미리 막으려면 체력 관리와 시간 배분을 잘해야 합니다. 만화 연재는 독자와의 약속이니까요. 이런 말 하면 ‘꼰대’ 소리 듣는데…. 누가 저더러 ‘꼰대’라고 하는 것은 딱 질색입니다.”

요즘 그의 고민은 “‘민감한 소재’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댓글을 매우 꼼꼼하게 본다”는 곽씨는 “평범한 주제를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상상하지 못한 비난의 댓글들이 올라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제가 ‘가우스전자’에서 가장 아끼는 캐릭터가 ‘이상식’과 ‘차나래’ 부부예요. 사내에서 딱히 두드러지게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일상을 무덤덤하게 헤쳐나가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두 캐릭터가 더 이상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더라고요. 무직 청년들의 입장에선 그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거죠.”

“누구든 자기 인생의 창업자”

곽씨는 “가우스전자를 그리면서 전하고 싶은 말은 ‘누구든 자기 인생의 창업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차피 인생에는 ‘운빨’이라는 게 있고, 자기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친구들 중 직장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회사를 나온 뒤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그저 월급만 받는다고 회사 생활일까요? 어렵게 들어간 직장, ‘회사 내에서 창업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면 어떨까요. 그럼 아마 상사도 부하에게 함부로 못 대할 겁니다. 사업의 파트너에게 어떻게 예의 없이 굴 수 있어요?”

그는 인터뷰 말미에 “나 이렇게 진지한 사람 아닌데 너무 무겁게만 이야기한 것 같다”고 ‘귀여운 투정’을 부리며 “사람에겐 다양한 모습이 숨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내일 다른 사람과 인터뷰를 한다면 오늘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만날지도 몰라요. 그게 접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