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16일 오후 4시11분

[마켓인사이트] 화장품업체 카버코리아, 베인·골드만삭스가 인수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외환위기 당시 진로 부실채권에 투자해 1조원 이상의 차익을 거둔 골드만삭스 특수상황그룹(SSG)이 한국 화장품 회사 카버코리아의 경영권을 인수한다. 경영권 행사가 가능한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후 기존 최대주주와 공동 경영키로 했다. 최근 아이크림 브랜드인 A.H.C가 인기를 끌며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는 카버코리아를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은 카버코리아 창업자인 이상록 대표가 보유한 지분 60.17% 중 50% 이상을 인수하기로 하고 지난 10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거래 규모는 유동적이지만 4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지분 100%의 가치는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카버코리아 시가총액 약 6300억원에 경영권 프리미엄 약 15%를 얹은 7000억원 초반대에 책정됐다. 지난해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약 500억원의 최소 14배 수준이다. 이 대표도 상당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며 계속 경영에 참여한다. 나머지 카버코리아 주식 39.83%는 우신벤처투자 등 소수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다.

카버코리아는 1999년 이 대표가 설립한 에스테틱 화장품 제조업체다. 피부 관련 특허만 19개를 보유하고 있는 등 기술력과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남의 피부과와 피부관리실에서 좋은 품질로 입소문을 타던 중 2013년 TV홈쇼핑에 A.H.C 아이크림 제품이 소개되면서 소위 ‘대박’을 냈다. 배우 이보영이 모델로 출연해 “주름 개선을 위해 눈가에만 소량 사용하던 아이크림을 얼굴 전체에 바른다”고 소개하자 ‘이보영 아이크림’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이에 매출도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2014년 499억원이던 카버코리아의 매출은 작년 1565억원으로 불어났다. 영업이익도 99억원에서 483억원으로 뛰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 5월까지의 매출이 작년 전체 매출을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며 “올해 들어서도 성장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카버코리아는 A.H.C 외에도 ‘샤라샤라’ ‘비비토’ ‘우리꽃풀나무’ ‘언니레시피’ 등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판매 채널도 홈쇼핑 위주에서 오프라인 직영매장과 온라인 채널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강남구 도산대로에 대형 플래그십 매장을 내기도 했다.

베인캐피탈과 골드만삭스SSG는 카버코리아가 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성장성이 클 것으로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 카버코리아도 당초 기업공개(IPO)를 검토하다가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선진 경영기법을 배워야 한다고 판단해 투자 유치로 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회사 관계자는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은 재무적투자자(FI)이지만 사실상 전략적투자자(SI)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중국 내 판매 네트워크를 함께 발굴하는 등 해외 시장 공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인캐피탈은 미국계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들이 1984년에 세운 사모펀드 운용사다. 2012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였던 미트 롬니가 공동 창업자다. 경영컨설팅 회사가 모태인 만큼 장기적인 기업 가치 제고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베인캐피탈은 지난해말 30억 달러 규모의 아시아 펀드를 조성하고 한국에서 투자할만한 기업을 물색해왔다. 카버코리아가 첫번째 투자 사례가 된 셈이다.

골드만삭스 특수상황그룹(SSG)이 거래에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골드만SSG는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부실 자산에 주로 투자해 큰 돈을 번 것으로 유명한 일종의 특수 조직이다. 1997년 태국 바트화 폭락 당시 태국에서 자동차 대출 자산을 액면가의 45%에 사들여 2년여만에 두 배 이상 차익을 거둬들였다. 1998년 국내 최대 소주회사 진로 부도 당시 부실 채권 2억 달러 어치를 사들여 2005년 10억 달러에 되팔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부도난 골프장들을 대거 사들인 뒤 하나의 회사로 묶어 2006년 증시에 상장, 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IB업계 관계자는 “골드만SSG는 돈 되는 투자라면 뭐든지 하는 특수조직"이라며 "이번에는 중국에서 'K뷰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화장품 업계의 성장성에 베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창재/이동훈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