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68세…연극 거장 9명 '햄릿' 접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권성덕·전무송·박정자·손숙·정동환·김성녀 등 출연
유인촌·윤석화·손봉숙이 막내급…내달 12일 개막
연출 맡은 손진책 "배우들 존재감으로 승부할 것"
유인촌·윤석화·손봉숙이 막내급…내달 12일 개막
연출 맡은 손진책 "배우들 존재감으로 승부할 것"
“나이가 많은 것은 고통이나 장애물이 아니라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배우의 연기 그 자체, 존재감으로 승부하는 연극을 만들겠습니다.”
오는 7월12일부터 8월7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햄릿’을 연출하는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69)의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고전 중 하나인 ‘햄릿’이지만 이번 공연은 남다르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 9명의 평균 나이 68.2세, 이들의 연기 인생을 합치면 422년이 된다.
한국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배우 출신 연출가 이해랑(1916~1989)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해랑 연극상’을 받은 배우들이 뭉쳤다. 권성덕(75) 전무송(75) 박정자(74) 손숙(72) 정동환(67) 김성녀(66) 유인촌(65) 윤석화(60) 손봉숙(60) 등 9명이다. ‘막내급’인 유인촌과 윤석화가 각각 햄릿과 오필리어를 맡았다. 이들은 모두 27회 공연을 더블캐스팅 없이 소화한다. 단역을 맡는 등 1인 다역도 해낸다.
지난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의 관심이 ‘나이’에 집중됐다. 햄릿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 역의 손숙은 “나이는 고정관념일 뿐”이라며 “우리를 ‘어르신’이 아니라 ‘영원한 배우’로 남겨달라”고 했다. “외국 무대에는 배불뚝이 오셀로도 있고, 머리가 벗겨진 햄릿도 있어요. 요즘 연습실에서 유인촌의 햄릿을 보고 있으면 어느 젊은 배우가 와도 저렇게 해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대단합니다.”
유인촌은 햄릿 역할만 벌써 여섯 번째다. 1999년 이후 17년 만에 다시 햄릿으로 무대에 선다. 하지만 그도 “흘러간 나이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몇 차례 했다는 것이 더 큰 부담입니다. ‘지금 나이에 이런 역할을 해도 되나’ 하는 걱정도 들고…. 다 잊고 제 경험이 극 중 나이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윤석화는 “데뷔하는 느낌”이라며 “이 나이에 이렇게 밤새 울면서 (역할을) 고민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오랜 기간 꿈꿔온 오필리어 역을 환갑이 돼서야 만났다. “손진책 선생님이 ‘가장 순수한 영혼 그 자체를 보여달라’고 하세요. 그래도 제 나이가 있는데…. 밤새도록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맑은 존재’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나가도 선생님께는 흡족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하늘 같은 선배들 앞에서 연기 지적을 받을 때면 ‘내가 이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구나’라며 기쁜 마음이 들다가도 쥐구멍에 숨어들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연습실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다. “이 나이에 ‘어리다고 기죽지 말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쉬는 시간에 노래 부르고 춤도 추고 재롱도 떱니다. 조금이나마 이 작품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하하.”
이번 ‘햄릿’의 특징은 나이뿐 아니라 성별 경계도 넘어선다는 것. 여자 배우들이 남자 배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박정자가 오필리어의 아버지 플로니어스, 김성녀가 햄릿의 친구이자 관찰자인 호레이쇼, 손봉숙은 햄릿의 또 다른 친구 로젠크란츠 역을 맡았다.
유인촌은 “연습실은 그 어떤 현장보다 치열하고 진지하다”고 귀띔했다. 가장 열정적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햄릿의 삼촌 클로디어스 왕을 연기하는 정동환이다. 그는 “연기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고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즈 역의 전무송은 이해랑 선생의 말을 빌려 “‘내면을 볼 수 있게 연기하라’는 가르침을 늘 마음에 품고 연기한다”며 자신의 연기 철학을 들려줬다. 박정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엊그제 꿈을 꿨습니다. 객석은 꽉 차 있는데, 대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꿈이었죠. 무대에 서는 사람은 모두 한 번쯤 이런 악몽을 꿀 거예요. 이 막막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연습장에 와서 이 얘기를 하니 유인촌 씨가 그러더라고요. ‘이번 연극 잘되겠는데요?’ 잘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오는 7월12일부터 8월7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햄릿’을 연출하는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69)의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고전 중 하나인 ‘햄릿’이지만 이번 공연은 남다르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 9명의 평균 나이 68.2세, 이들의 연기 인생을 합치면 422년이 된다.
한국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배우 출신 연출가 이해랑(1916~1989)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해랑 연극상’을 받은 배우들이 뭉쳤다. 권성덕(75) 전무송(75) 박정자(74) 손숙(72) 정동환(67) 김성녀(66) 유인촌(65) 윤석화(60) 손봉숙(60) 등 9명이다. ‘막내급’인 유인촌과 윤석화가 각각 햄릿과 오필리어를 맡았다. 이들은 모두 27회 공연을 더블캐스팅 없이 소화한다. 단역을 맡는 등 1인 다역도 해낸다.
지난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의 관심이 ‘나이’에 집중됐다. 햄릿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 역의 손숙은 “나이는 고정관념일 뿐”이라며 “우리를 ‘어르신’이 아니라 ‘영원한 배우’로 남겨달라”고 했다. “외국 무대에는 배불뚝이 오셀로도 있고, 머리가 벗겨진 햄릿도 있어요. 요즘 연습실에서 유인촌의 햄릿을 보고 있으면 어느 젊은 배우가 와도 저렇게 해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대단합니다.”
유인촌은 햄릿 역할만 벌써 여섯 번째다. 1999년 이후 17년 만에 다시 햄릿으로 무대에 선다. 하지만 그도 “흘러간 나이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몇 차례 했다는 것이 더 큰 부담입니다. ‘지금 나이에 이런 역할을 해도 되나’ 하는 걱정도 들고…. 다 잊고 제 경험이 극 중 나이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윤석화는 “데뷔하는 느낌”이라며 “이 나이에 이렇게 밤새 울면서 (역할을) 고민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오랜 기간 꿈꿔온 오필리어 역을 환갑이 돼서야 만났다. “손진책 선생님이 ‘가장 순수한 영혼 그 자체를 보여달라’고 하세요. 그래도 제 나이가 있는데…. 밤새도록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맑은 존재’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나가도 선생님께는 흡족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하늘 같은 선배들 앞에서 연기 지적을 받을 때면 ‘내가 이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구나’라며 기쁜 마음이 들다가도 쥐구멍에 숨어들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연습실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다. “이 나이에 ‘어리다고 기죽지 말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쉬는 시간에 노래 부르고 춤도 추고 재롱도 떱니다. 조금이나마 이 작품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하하.”
이번 ‘햄릿’의 특징은 나이뿐 아니라 성별 경계도 넘어선다는 것. 여자 배우들이 남자 배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박정자가 오필리어의 아버지 플로니어스, 김성녀가 햄릿의 친구이자 관찰자인 호레이쇼, 손봉숙은 햄릿의 또 다른 친구 로젠크란츠 역을 맡았다.
유인촌은 “연습실은 그 어떤 현장보다 치열하고 진지하다”고 귀띔했다. 가장 열정적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햄릿의 삼촌 클로디어스 왕을 연기하는 정동환이다. 그는 “연기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고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즈 역의 전무송은 이해랑 선생의 말을 빌려 “‘내면을 볼 수 있게 연기하라’는 가르침을 늘 마음에 품고 연기한다”며 자신의 연기 철학을 들려줬다. 박정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엊그제 꿈을 꿨습니다. 객석은 꽉 차 있는데, 대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꿈이었죠. 무대에 서는 사람은 모두 한 번쯤 이런 악몽을 꿀 거예요. 이 막막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연습장에 와서 이 얘기를 하니 유인촌 씨가 그러더라고요. ‘이번 연극 잘되겠는데요?’ 잘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