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돈' 관리…고수는 남다르다
코스피지수 1950~2000선을 오가는 지루한 증시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지난 13일까지 코스피 지수 상승률은 0.19%에 불과하다.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펀드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최근 한 달 동안 빠져나간 자금만 2조원이 넘는다.

'쉬는 돈' 관리…고수는 남다르다
잠시 쉬어가는 것도 투자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기성 자금’이 부쩍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경민 미래에셋대우 상무는 “시장이 변화하면서 주식의 ‘장기 투자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자산가들도 이제는 단기간 수익을 낸 뒤 확정 금리상품이나 현금성 자산에 넣어두고 재투자 기회를 노리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증시에 힘이 모자라거나 상승 모멘텀이 안 보이는 국면에선 안전자산이 인기를 끌기 마련이다.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채권형펀드로는 한 달 새 9527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채권형펀드 투자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리스크(위험) 관리 차원에서 포트폴리오의 일부를 안전자산으로 채우려는 투자자들이 첫 부류다. 이들은 주로 중장기 국공채를 담는 펀드를 선호한다.

'쉬는 돈' 관리…고수는 남다르다
두 번째 부류는 주식형 자산에서 잠시 돈을 빼서 보관할 수 있는 ‘쉼터’를 찾는 투자자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잠시 쉬는 돈은 대부분 머니마켓펀드(MMF)에 집중됐다. 하지만 시중 금리가 연 1%대로 내려가면서 MMF보다 기대 수익률이 높은 상품으로 자금이 움직이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투자자들의 요구에 가장 잘 부합하는 상품은 초단기 채권펀드다. 원금 회수기간이 짧아 일반적인 채권 연계 상품에 비해 원금 손실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한 달간 초단기 채권 자금은 3822억원에 이른다. 오온수 현대증권 자산컨설팅 팀장은 “저금리 기조 속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 자금이 초단기채 상품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쉬는 돈을 공모주 청약에 활용하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공모주 청약은 경쟁률이 100 대 1이 넘기 때문에 억원 단위의 자금을 넣어야 수백만원 안팎의 주식을 받을 수 있다. 최근 공모주 투자로 재미를 본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1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뒤 연일 상한가를 기록한 해태제과식품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까지 호텔롯데,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공모주 청약시장에서 바람몰이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주로 채권에 투자하면서 일부 공모주를 담는 공모주펀드도 대기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주식+채권’ 조합 대신 ‘공모주+채권’ 조합으로 재테크 보릿고개를 넘겠다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분석이다.

공모주 펀드들은 대부분 전체 포트폴리오의 70~90%를 채권으로, 나머지 10~30%를 공모주로 채운다. 공모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해도 일정 수준 이상 수익률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개별적으로 공모주 투자를 할 때와 달리 소액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도 공모주 펀드의 장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증시에 변수가 많은 국면인 만큼 현금성 자산을 일정 비중 이상 가져가는 ‘휴(休) 테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글로벌 증시에 ‘블랙스완(뜻하지 않은 돌발 위험)’이 나타나 지수가 단기 급락했을 때 저가 매수에 나설 수 있다는 논리가 점점 더 먹혀들 것이란 분석이다. 올해 돌발 악재 후보군으로는 중국 지수의 MSCI 편입, 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미국 금리 인상 스케줄 등이 거론된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