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 마천루와 책…폐기물로 만든 기막힌 상상
전시장에 거대한 목조 마천루가 여럿 들어왔다. 국적과 시대를 알 수 없는 모양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나무막대는 한때 창틀로 쓰인 흔적을 드러낸다. 반면 스테인리스스틸 이음새는 묘하게 미래적이다.

이 작품은 중국 출신 작가 리우웨이(44·사진)의 ‘하찮은 실수’다. 작가는 이전 시대가 남긴 폐기물로 새로운 상상 속 도시를 세웠다. 중국 베이징 재개발 현장에서 수집한 건축자재를 이어붙였다.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겹쳐 일어나는 철거와 건축 과정을 한 작품에 담았다.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는 ‘리우웨이: 파노라마’ 전은 젊은 작가 눈에 비친 시대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리우웨이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중국 현대미술의 차세대 주자다. 1976년 1차 톈안먼사태 이후 일어난 문화적 격변기를 거치며 성장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활동 초기부터 현재까지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첫 회고전이다. 1999년 데뷔작 ‘참을 수 없는’부터 올해 신작 ‘파노라마’까지 회화, 사진, 영상, 설치작품 12점이 나왔다.

작가는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화 과정을 일상적 소재로 재치있게 표현했다. 금속과 목재로 제작한 거대한 설치작품 ‘룩! 북(Look! Book)’이 그렇다. 전형적인 책 모양 대신 가지각색의 기하학적인 형태다. 거대한 암석이나 과거의 유적 같은 모습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리우웨이는 “글 중심에서 이미지 위주로 변한 시대상을 반영했다”며 “문명과 지식을 상징하는 책의 역사적 무게는 암석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구태를 풍자하는 작품도 있다. 작가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긴 2004년 상하이비엔날레 출품작 ‘풍경처럼’이다. 언뜻 중국 전통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벌거벗은 사람들의 엉덩이를 찍은 흑백사진이다. 당시 대규모 설치작품을 출품하려다 주최 측의 반대에 부딪힌 작가의 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다.

1999년 로댕갤러리로 개관해 국내외 현대미술을 소개해온 삼성미술관 플라토의 마지막 전시다. 오는 8월14일까지, 관람료 무료. 1577-7595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