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25일 41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안을 마련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신청했으나 산업은행이 보완을 요구하고 나섰다. “용선료 협상계획 등에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에 대한 자율협약 개시 결정은 다음주로 미뤄질 공산이 커졌다. 산업은행은 “보완만 충분히 된다면 1주일 내라도 자율협약을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말 그대로 ‘보완요구’지 ‘퇴짜’를 놓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시장에선 한진해운이 채권단과 협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22일 자율협약 신청계획을 미리 밝힌 데 대해 정부와 산업은행이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부가 향후 봇물을 이룰 기업 구조조정 신청을 앞두고 대기업과 최대주주에 “부실을 내고 ‘나 몰라라’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 산은 "용선료 인하 방안 미흡"…한진해운 자율협약 '일단 보류'
○한진해운 자구안 뭘 담았나

한진해운은 이날 자구계획안에 △용선료 인하 △선박금융 등 차입금 상환유예 △공모 회사채 상환유예 등 채무재조정 방안을 담았다. 용선료 인하를 위해 해외 선주와 협상하고, 공모 회사채 유예를 위해 사채권자 집회를 열겠다는 게 골자다. 용선료는 ‘내년까지 고가에 빌린 선박이 대부분 반환될 예정이어서 원가 구조가 개선될 것’이란 자체 분석도 담았다. 4112억원의 추가 유동성 확보 방안도 제시했다. 광양터미널 등 보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175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 미국 애틀랜타, 부산에 있는 사옥을 팔아 1022억원을 조달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나머지 1340억원은 벌크선 매각 등을 통해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답변은 “보완을 요구한다”였다. 한진해운의 자구계획안이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한진해운 자구계획안의 세부 내용을 파악한 결과 일부 항목의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용선료 인하 계획 보완이 관건

한진해운은 산업은행 요구에 따라 이르면 이번 주말께 보완계획을 다시 제출할 예정이다. 관건은 용선료 인하 계획이 될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용선료 인하 협상팀 구성, 협상전략 등에 관한 계획도 없이 단순히 ‘낮추겠다’는 계획만 제출해선 자율협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한진해운에 전달했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한 달여 전부터 용선료 인하 협상을 벌였는데, 한진해운은 그런 노력도 없이 무조건 ‘낮추겠다’고만 얘기한다는 게 산업은행 관계자의 전언이다.

용선료 인하 목표도 산업은행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이 현재 지급하는 1조원의 용선료 가운데 연간 2000억원씩 용선료를 낮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연간 1000억원 인하를 목표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상선도 최소 20% 이상 인하를 목표로 협상을 하고 있다”며 “한진해운도 이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거치는 동안 필요한 운영자금 마련 계획도 요구하고 있다.

○진통 겪는 한진해운 자율협약

시장에선 이날 산업은행의 보완 요구를 ‘한진해운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올해 초부터 불거진 양측의 갈등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올초 한진그룹에 “한진해운도 이상 신호가 감지된다”며 자금 상황을 점검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현대상선과 달리 큰 문제가 없다”고 버티다가 지난 2월 산업은행 요청으로 마지못해 삼일회계법인의 컨설팅을 받았다. 지난 22일 한진해운이 산업은행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산업은행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자구계획에 대한 협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협약 신청을 발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기업 대주주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한진해운을 보면 ‘나는 손을 뗄 테니 알아서 살려달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며 “자구계획안을 보완하라는 건 진정성을 갖고 용선료 협상 등을 해보겠다는 걸 보여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일규/안대규/이현일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