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계 ‘맞수’인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상대보다 앞선 미세공정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 최대 고객인 애플을 잡기 위해서다. 애플은 조금이라도 기술이 앞선 회사에 아이폰의 두뇌격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위탁생산을 번갈아가며 맡기고 있다. 아이폰용 AP는 한 번 주문받으면 수주 규모가 50억달러에 달하는 데다 이익률도 높아 공급업체의 연간 실적을 좌우한다.
한번 수주하면 50억달러…애플 향한 구애…삼성전자-TSMC, 피 말리는 '나노 전쟁'
◆무한경쟁 벌이는 삼성과 TSMC

반도체 업계에선 ‘2년마다 집적도가 2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사실상 폐기됐다. 미세공정 기술이 10나노미터(㎚)대에 접어들면서 개발 자체가 힘들어져서다. 또 원래 공정을 미세화하면 한 웨이퍼에서 만드는 칩 수가 늘고 집적도도 높아져 칩당 생산원가는 낮아진다. 하지만 10㎚대에선 설계, 공정, 장비, 재료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원가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설계가 복잡해 원가가 올라가는 ‘무어 스트레스(무어의 법칙에 반대되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어의 법칙을 개발한 인텔마저 지난 2월 프로세서 공정 전환 주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바꿨다. 무어의 법칙대로라면 현재의 14㎚ 공정을 올해 말 10㎚로 전환해야 하지만, 앞으로 1년간 14㎚를 더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TSMC는 예외다. 이들에는 아직 무어의 법칙이 유효하다. 시스템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지난 20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고객사를 초청해 올해 4분기 10㎚ 공정에서 생산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또 “14㎚ 공정도 3세대로 업그레이드했으며 이 공정에서 생산한 칩은 경쟁사에 비해 생산성이 높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한술 더 뜬다. 조만간 10㎚ 공정 생산을 개시할 것으로 알려진 TSMC는 지난 14일 기업설명회(IR)에서 “내년 초 7㎚ 공정에서 초기 생산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10㎚ 생산을 공식화하며 뒤쫓아오자 격차를 더 벌리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애플 AP 주문은 50억달러짜리

삼성전자와 TSMC가 ‘무어 스트레스’에도 첨단 미세공정 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애플을 잡기 위한 것이다. 아이폰용 AP의 원가가 개당 약 25달러 수준이고 연간 아이폰 판매량이 약 2억대인 점을 감안하면, 한 번 주문을 받으면 50억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올릴 수 있어서다.

애플을 가운데에 둔 양사의 경쟁은 2012년 말 시작됐다. 2007년 아이폰이 나온 뒤 AP 생산을 도맡아온 삼성전자는 2013년 위기에 처했다. 애플이 삼성과의 특허 소송 중에 TSMC로 돌린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6(2014년 출시)에 들어갈 A8칩을 2013년 처음 TSMC에 발주했다. 삼성이 미웠던 데다 TSMC가 20㎚ 공정에서 삼성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에 애플의 AP 파운드리 주문은 절대적이었다. A8칩을 TSMC에 빼앗긴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2014년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다. 절치부심한 삼성전자는 14㎚ 공정 개발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TSMC도 비슷한 16㎚ 공정으로 추격해왔다. 결국 지난해 나온 아이폰6S의 AP A9칩은 양사가 물량을 나눠 생산했다.

문제는 올 9월에 나올 아이폰7의 AP A10칩이다. TSMC가 10㎚ 공정 개발에 앞서면서 애플 물량을 독차지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와신상담하며 7㎚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때문에 투자비도 급증하고 있다, TSMC는 최근 몇 년간 투자를 대폭 늘려 올해 100억달러가량을 투자한다. 삼성전자도 비슷하다.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내가 반도체 총괄이지만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에너지의 100%를 쏟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