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자리에 새로운 위원들이 앉는다. 21일 취임하는 조동철·이일형·고승범·신인석 위원은 오랜 저성장, 급변하는 통화질서에 대응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일곱 명 중 네 명이 교체되는 만큼 금통위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위기 때마다 적극적 통화정책을 주문한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이 세 명으로 늘어난 점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경기 전망과 대응책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통위에 'KDI 파워' 부상…긴장하는 한은
◆KDI 출신이 7명 중 3명

20일 하성근·정해방·정순원·문우식 금통위원이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지난 19일 금통위 전체회의에선 금리 동결(연 1.5%)이 결정됐다. 4·13 총선 당시 정치권의 경기 부양 요구가 높았지만 금통위는 큰 변화를 주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럼에도 금리 인하 기대는 여전하다. 주요 근거는 금통위에 새로 부상할 ‘KDI 파워’다. 기존 금통위 멤버인 함준호 위원 외에 조·신 위원이 추가돼 금통위 내 KDI 인맥은 세 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KDI 시절 같이 근무한 선후배 사이다. 한은 일각에선 KDI 출신들이 금통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금통위 인선 과정부터 주목받았던 조 위원은 셋 중 ‘맏형’이다. 1995년 KDI에 들어가 거시경제팀장,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맡으며 경제 전망과 거시정책 논의를 주도했다. 기획재정부 장관 정책자문관으로도 일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구 역량이 뛰어난 데다 주관이 뚜렷해 할 말은 꼭 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통화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통화정책 논쟁에 불을 붙였다. 작년 말엔 올해 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한은의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비둘기파 입지 커지나

신 위원(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1997년부터 10년간 KDI에서 근무했다. 2014년에 취임한 함 위원도 1996년 KDI에 들어가 금융 분야를 연구했다. 두 사람 모두 조 위원이 KDI 거시경제연구부에 들어온 지 1~2년 뒤 합류해 셋은 서로의 성향을 잘 아는 사이다.

KDI의 거시경제 역량을 대표하는 이들이 금통위의 상당 지분을 차지하게 됐다. 조 위원이 금통위에서도 통화정책의 적극적 역할을 중시한다면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의 입지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임인 하 위원도 금리 인하를 주장해 왔지만 일곱 명 중 한 명의 ‘소수의견’에 그쳤다.

한은도 긴장하고 있다. 한은 집행부의 경제 진단이 금통위원과 조화를 이뤄야 적절한 통화정책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과 고 위원(전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또한 경제 전문성을 갖췄다.

통화정책 방향은 미지수란 진단도 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금통위원들이 이론적 무장이 돼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기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어려운 정책이 필요한 때”라며 “주요국 완화정책이 큰 효과를 못 본 만큼 금통위가 금리 인하를 당장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같은 연구소 출신이라고 정책 성향도 같을 수는 없다”며 “2분기 경기 흐름을 살펴본 뒤 정책 결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미/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