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개막한 창작뮤지컬 ‘마타하리’는 화려한 무대와 섬세한 음악, 관능적인 안무가 어우러지며 볼거리 가득한 ‘쇼 뮤지컬’의 진수를 보여줬다.
‘마타하리’는 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당한 비운의 무희 ‘마타하리(마가리타 거트루이다 젤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마타하리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프랑스군 조종사 아르망, 마타하리에게 스파이가 될 것을 제의한 프랑스군 정보국 총책임자 라두 대령의 어긋난 사랑을 그렸다. 250억원이라는 제작비와 제프 칼훈(연출)·아이반 멘첼(대본)·프랭크 와일드혼(작곡)·잭 머피(작사) 등 해외 유명 연출진의 참여로 올해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로 꼽혔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려한 무대였다. 무대 변화만 총 52회, 장면 전환을 위한 큐가 195회로 기존 대형 뮤지컬의 두 배다. 인도풍 음악, 아메리칸 재즈, 드뷔시의 클래식 등 와일드혼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비운의 무희’ 마타하리의 심리 변화를 효과적으로 따라간다. 춤 하나로 유럽 일대를 뒤흔든 마타하리답게 그의 물랭루주 공연 장면이 극의 백미다. 인도풍 음악에 맞춰 베일을 하나씩 뜯으며 선보이는 ‘사원의 춤’은 관능적인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벨 에포크(좋은 시절)’를 상징하는 구슬 장식이 촘촘히 박힌 15벌의 의상도 눈길을 끈다. 네 명의 군인이 반복되는 탱고 선율에 맞춰 라두 대령의 부하, 독일 장군의 부하가 돼 마타하리와 춤을 추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화려한 무대가 평면적 이야기 전개를 채우지는 못했다. 마타하리는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주체적인 여성이 아니라 두 남자 사이에서 휘둘리는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 묘사된다. 어릴 때 자신을 겁탈한 삼촌, 하녀를 겁탈한 전 남편 때문에 사랑을 믿지 않게 된 마타하리가 갑자기 아르망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마타하리에 대한 라두 대령의 왜곡된 사랑과 집착은 ‘사랑과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배우 옥주현의 노래는 환상적이지만, 관능적인 무희를 연기하는 장면에서 뮤지컬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의 우아한 왕비가 겹쳐 보이는 것도 아쉬웠다. 6월12일까지. 6만~14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