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20~30대라면 유년 시절 자동차 레이싱의 치열함을 그린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계 사이버 포뮬라’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속 레이싱 머신인 ‘아스라다’는 뛰어난 성능을 바탕으로 주인공 ‘가자미 하야토’를 그랑프리 우승으로 이끈다. 아스라다가 차체의 뛰어난 균형 감각으로 코스 이탈 위기를 넘기고 부스터를 이용해 앞서가던 차량을 따라잡는 장면은 무척 인상 깊었다.

만화 속에 있던 아스라다와 같은 성능을 자랑하는 차량이 올해부터 한국 땅을 달린다. 포르쉐가 야심차게 내놓은 911시리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키알라미 서킷’과 인근 도로에서 뉴 911 터보와 터보 S, 뉴 911 카레라 4와 4S 등 모델을 순차적으로 시승했다.

우선 911 시리즈 가운데 가장 높은 사양을 자랑하는 터보 S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포츠카답지 않은 넉넉한 실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쿠페지만 뒷좌석에도 한 명 정도는 충분히 탈 수 있어 보였다. 스포츠 버킷 형태의 시트는 편안하게 몸을 감싼다. 시승차는 강렬한 적색이었다. 물론 소비자 취향에 맞게 다양한 색상을 적용할 수 있다.
터보S·카레라4,지면 움켜쥐듯 폭발적 가속…포르쉐를 느끼다
가속페달을 밟자 역동적인 배기음을 내며 빠르게 튀어 나갔다. 포르쉐 스포츠 배기 시스템 외에 어떤 인위적인 조작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내리막길과 연결된 900m 길이의 직선코스에선 시속 260㎞까지 달려봤다. 빠른 속도에도 차체의 흔들림은 없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차체가 더욱 지면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공기의 흐름을 조절해 주는 ‘에어플랩’이 접혔다 펴졌다를 반복하며 속도 변화에 따른 차체 안정성을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벌어진 앞차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핸들 오른쪽 아래에 동그랗게 달린 주행모드 선택 다이얼에 손이 갔다. 가운데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차는 쏜살같이 튕겨 나갔다. F1 등 경주용 차에 장착된 ‘다이내믹 부스터’ 기능이 작동한 것이다. 부스터를 작동시킨 순간 기어가 한두 단계 내려가면서 가속을 위한 강력한 회전력이 발생했다. 엔진은 ‘스로틀 밸브’를 열어 더 많은 공기로 연료를 빠르게 태웠다. 연료소비 효율이 20~30% 나빠지긴 했지만 순간 가속도는 크게 상승했다.

부스터 모드가 유지되는 시간은 20초다. 20초가 지나면 다시 원래의 주행모드로 돌아온다. 따라서 코너를 도느라 속도가 줄어들었을 경우나 앞차를 순간적으로 추월할 때 쓰면 좋다. 토마스 크리켈베르크 포르쉐 매니저는 “속도가 높은 상태에서 더 빠른 속도로 가기보다는 속도가 느린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용도로 쓰면 좋다”고 설명했다.

터보에 이어 4륜구동 모델인 카레라4를 타고 서킷을 돌았다. 대회전 코스를 시속 200㎞ 가까운 빠른 속도로 진입하니 앞바퀴를 축으로 뒷바퀴가 회전하는 오버스티어 현상이 발생했다. 코스를 이탈하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핸들을 꽉 붙잡자 차량은 빠르게 균형을 잡았다. 포르쉐의 트랙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뒷바퀴와 앞바퀴의 구동력을 상황에 맞춰 배분했기 때문이다.
터보S·카레라4,지면 움켜쥐듯 폭발적 가속…포르쉐를 느끼다
카레라4를 타고 일반도로에 들어서자 걱정이 앞섰다. 스포츠카 특유의 낮은 차체가 도로 주행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프런트 액슬 높이 조절 장치’를 구동하니 차체의 높이가 40㎜ 올라갔다. 과속방지턱 등을 넘어 갈 때도 차체가 바닥에 닿지 않았다. 내비게이션 등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편의성도 개선됐다. 포르쉐 관계자는 “이번에 선보인 911 시리즈는 스포츠카 특유의 속도와 주행 능력뿐 아니라 일반도로에서의 운전 편의성 향상을 개발 단계에서부터 고려해 설계했다”며 “복잡한 시내 주행에서도 운전자는 안정감과 운전하는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국내 출시된 카레라 4의 복합연비는 L당 9.3㎞이며, 터보는 인증이 진행 중이다. 가격은 1억4190만(카레라 4)~2억5860만원(터보 S)이다.

요하네스버그=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