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인력 구하려 해도 지방 근무 기피 현상으로 중소·중견기업 경쟁력 약화
민·관 합동 R&D센터 만들어 국내 제조 경쟁력 높여야
상위 업체와의 기술 격차, 후발 주자 대비 가격 경쟁력 하락은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수산중공업의 매출은 2012년 1381억원에서 지난해 1018억원으로 떨어졌다.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은 “당장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일본을 넘어서지 못하면 국내 제조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신기술을 위한 연구개발(R&D)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심각한 R&D 인력난
R&D 환경은 녹록지 않다. “유능한 개발 인력은 지방으로 오지 않는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수산중공업은 정기 공채로는 사람을 뽑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5~6년 전부터 수시 채용으로 바꿨다. 그래도 연구원 뽑기가 힘들다. 지원자 자체가 적어서다. 그나마 회사가 기술 자문위원으로 초빙한 공대 교수들의 추천으로 온 입사자가 연구개발직 자리를 메운다.
R&D 인력난은 회사 명성과 매출에도 치명상을 입혔다. 2012년 R&D 투자를 전년보다 50% 늘렸지만 신제품 개발에 실패했다. 당시 개발된 제품은 내부 성능 테스트를 통과했다. 70여개국에 수출이 이뤄졌고 3~4개월 뒤부터 바이어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현지에서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였다. 정 회장은 설계도를 꼼꼼히 살폈다. 치명적인 설계 결함을 발견했다. 단순 수리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전량 리콜에 들어갔다. 1년 이익을 포기했다. 그는 “R&D 역량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며 “양질의 개발 인력을 구하지 못했다는 게 실패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R&D센터 건립을”
정 회장은 “R&D 역량 부족은 수산중공업만의 문제는 아니다”며 “국내 모든 중소·중견기업은 기술력 정체로 인한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지금까지는 해외에서 기술을 사오거나 혹은 모방해서 경쟁력을 유지해왔는데 이제 그런 방식으로는 후발주자에 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수도권 민·관 합동 R&D센터 건립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연구원들이 서울 및 수도권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 같은 업계의 목소리가 정부 관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하루하루 속이 탄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센터 내에 전국으로 퍼진 국책 연구소의 사무소도 입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들이 연구소 본원을 방문하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 제품의 내구성은 영영 일본 제품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철로 만든 제품의 내구성은 열처리 기술에 달렸는데 R&D 없이는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것. 유압브레이커 글로벌 4위 업체인 일본 후루카와는 철강 열처리 노하우가 100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열처리 기술은 다소 떨어지지만 내년까지 기능에서는 후루카와를 앞서는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화성=이지수 기자 oneth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