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한국 '스릴러 소설'의 진수 보여주겠다"
소설가 정유정 씨(50·사진)는 악(惡)을 관찰하는 작가다. 그의 장편 《7년의 밤》 《28》(은행나무)에선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기 힘든 악행이 등장한다. 여기에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더해져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지난해 독일에서 번역 출간된 《7년의 밤》은 유력 주간지 디 차이트가 선정한 ‘올해 주목할 범죄 소설’ 8위에 오르며 독자의 호평을 받았다. 독일어 번역소설에 주는 ‘2017 리베라투어상’ 후보에도 올라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최근 프랑스어로도 출간됐다. 프랑스에서는 출간 전부터 서점 1000여곳이 구매 의사를 밝혀 성공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그동안 프랑스에 진출한 한국 작품 중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16일(현지시간) 개막한 제36회 파리도서전에 초청작가로 참여한 정씨는 “소설 속에서 악을 그린 것은 역설적으로 구원을 꿈꿨기 때문”이라며 “작품에 담긴 뜻을 외국 독자들도 잘 이해해 줘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악을 다룬 소설을 예방주사에 비유했다. 사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범죄나 기현상을 소설로 미리 접하면 단지 비판에 그치지 않고 생각할 여지를 갖게 된다는 것. 《7년의 밤》은 교통사고로 소녀를 숨지게 한 뒤 댐에 버린 전직 프로야구 선수와 딸의 복수를 하려는 잔혹한 아버지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독일 문학평론가 아니타 자파리는 “정교한 이야기 구조 속에 인간의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며 “소설에 담긴 한국적 정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평했다.

프랑스에서 《7년의 밤》을 펴낸 드크레센조 출판사의 프랑크 드크레센조 대표는 “이 작품은 스릴러 중에서도 문학성이 뛰어나 출간을 결정했다”며 “프랑스에는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가 많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정씨는 오는 5월 출간되는 신작 《종의 기원》(은행나무)에서 더 강하고 무서운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수영 유망주에서 로스쿨 학생으로 진로를 바꿨지만 내면에는 사이코패스의 최상위 포식자가 숨어 있는 인물이다. 정씨는 “평범해 보이는데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연내 독일 방문도 검토하고 있다는 그는 “그래도 국내 독자가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외국 독자를 만나는 것은 신기하고 기쁜 일이지만 부수적 성과입니다. 먼저 국내 독자를 만족시키면 그다음에 알아서 될 일이니까요. 신작 출간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며 설레는 독자를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파리=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