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 9단(사진)과 구글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바둑 대국을 둘러싸고 불공정 논쟁이 뜨겁다. 이 9단 혼자 1200여개의 중앙연산처리장치(CPU)를 갖춘 알파고의 실력조차 모른 채 경기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9단은 지난 9일과 10일 알파고와의 두 차례 대국에서 모두 불계패했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알파고는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있지만, 이미 공개된 이 9단의 기보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 9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는 상대와 싸워야 한다. 이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20년 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퍼로프와 컴퓨터의 대결 당시 현장에는 슈퍼컴퓨터가 설치됐다. 하지만 이번 대국에서는 알파고가 비밀 장소에 있고 미국 중서부 구글 클라우드센터를 통해 서울의 대국장과 광케이블로 연결돼 있다. 알파고는 두뇌에 해당하는 CPU 1202개와 그래픽처리장치(GPU) 176개를 탑재하고 1000여대 서버를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둑은 1 대 1 대결이라는 원칙을 어겼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알파고의 기보가 거의 공개되지 않은 것도 불공평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9단 기보는 모두 공개돼 있지만 3000만건의 기보를 공부하고, 스스로 한 달에 100만번의 대국을 소화한 알파고 기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딥마인드가 지난 1월 네이처에 알파고 논문을 실으면서 유럽 챔피언 판후이 2단과 알파고의 5번기 기보를 공개한 것이 전부였다.

사법부 내 정보기술(IT) 전문가로 알려진 강민구 부산지방법원장도 11일 이 9단과 구글 측의 계약 체결이 ‘불공정 계약’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모 변호사가 클라우드로 작동되는 알파고 시스템과의 계약이 형법상 사기에 준하는 행위라고 얘기했다”며 “독립형 컴퓨터와 대결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여러 컴퓨터가 한꺼번에 연산을 하는 방식은 훈수꾼을 둘 수 없는 바둑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에 사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