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카드사들 관심…일부는 연 12% 수익률 가능할 듯
개인 신용평가에도 도입…테스트서 부도율 하락 효과

조니뎁 주연의 영화 트랜센던스(Transcendence)를 보면 주인공의 뇌가 컴퓨터에 업로드돼 인공지능으로 진화한 후 엄청난 투자 이익을 거두는 장면이 나온다.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천재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컴퓨터와의 첫 대국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것도 인공지능의 급속한 성장을 반증한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최근 금융권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 인공지능형 시스템은 고액연봉을 받는 '금융맨' 못지않게 맹활약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 자산관리 시스템 로보 어드바이저(Robo-Advisor)가 있다.

◇ 수익률 높아…은행권 속속 도입

로보 어드바이저는 로봇을 뜻하는 로보(Robo)와 자문가를 뜻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다.

투자자가 온라인 설문으로 입력한 정보를 토대로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투자까지 실행하는 단계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

지난 1월 출시된 로보어드바이저 자문형 신탁상품 '쿼터백 R-1'은 출시 2개월 만에 약 2%의 수익률을 올렸다.

단순 계산하면 연이율이 12%대에 이르는 셈이다.

이는 일반 펀드들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뒷걸음치고 있는 현시점에서 보면 괄목할만한 실적이라 할 만하다.

쿼터백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6개 자산군과 77개 지역, 920조 개 이상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투자대상을 선별하는 글로벌 자산배분 상품이다.

이 상품은 KB국민은행과 쿼터백투자자문이 은행권 최초로 선보인 로보어드바이저 자문형 신탁상품이다.

쿼터백투자자문의 장두영 부대표는 "감정적 부분을 배제한 상태에서 투자하기 때문에 무리한 투자를 절대 하지 않는다"며 "'대박'을 내기는 어렵겠지만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적어도 인간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도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속속 출시 중이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3일 자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Cyber PB'(사이버 피비)를 오픈했다.

고객이 직접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자의 성향과 투자목적을 분석한 후 1:1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우리은행도 오는 14일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며 신한은행도 조만간 관련 상품을 출시할 방침이다.

◇ 인공지능에 매혹된 카드사

카드사도 인공지능에 매혹됐다.

소비의 트렌드를 빠르게 쫓아가고 미래 경향을 예측해야 하는 카드사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관심을 끄는 빅데이터와 연계해 인공지능을 활용할 방안을 카드사들은 모색하고 있다.

KB국민카드가 운영하는 '스마트 오퍼링 시스템'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접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스템은 수많은 카드 승인 데이터를 자체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뒤, 고객의 카드 이용 등 행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적합한 혜택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휴게소에서 구매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인공지능에 의해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판단, 주유 할인 등을 제공한다는 것을 고객에게 알리는 식이다.

신한카드, 삼성카드 등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다른 카드사에서도 고객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 고객이 찾기 전에 먼저 할인 정보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금융사에서 수집하는 빅데이터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인공지능이 알아서 학습하는 '머신 러닝'에 관한 관심도 증대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이 기술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고 있지는 않으나, 카드사들은 앞으로 빅데이터 활용도를 높일 방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면서 경험에 따라 '좋은 데이터'와 '불필요한 데이터'를 걸러낸다면 시장의 동향에 대한 예측력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과거 빅데이터가 단순히 비가 오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다"며 "사람의 힘으로 이를 선별하기보다는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소비를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해외 카드업계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고 덧붙였다.

삼성카드는 고객과의 상담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머신 러닝'에 기반을 둔 시스템을 활용, 상담센터에서 접수한 월 70만 건의 상담 메모를 분석하는 것이다.

삼성카드는 인공지능으로 고객의 상담 유형과 수요를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할 예정이다.

◇ 개인 신용평가에도 도입…"부도율 3%포인트 하락 효과"

이렇게 인공지능을 이용해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앞날을 예측하는 기법은 신용대출로도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KB캐피탈은 이달 초 NICE평가정보, 핀테크 업체인 솔리드웨어와 공동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신용평가모형을 만들기로 계약했다.

새로운 신용평가모형이 도입되면 인공지능이 방대한 빅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기존의 신용평가모형에서는 평가할 수 없는 기준에 따라 개인의 신용도를 판단하게 된다.

여기서도 분석을 거듭할수록 인공지능이 정확도 높은 정보를 선택해 신용평가를 고도화하는 '머신 러닝' 기능이 활용된다.

솔리드웨어 엄수원 대표는 "신용평가에서 활용되는 인공지능의 '머신 러닝'은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벌인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기술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기존 신용평가에서는 20개 안팎의 정보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쳤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논리적으로는 무한대의 정보도 결합해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엄 대표는 실제로 솔리드웨어가 최근 한 저축은행과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부도율을 약 3%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성과에 따라 주요 시중은행, 저축은행 등과도 도입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 인공지능은 알고리즘 바탕…맥킨지 "수익 30% 늘릴 수 있을 것"

알고리즘 트레이딩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 일정한 논리구조(알고리즘)에 따라 증권, 파생상품, 외환 등 유동성 자산을 자동으로 거래하는 매매방식이다.

컴퓨터가 과거 시장 데이터들을 학습, 패턴을 분석해 미래의 주식이나 펀드 시장을 예측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활성화와 함께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이미 정해진 규칙(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거래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알고리즘 트레이딩 등으로 수익의 30%를 늘릴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김회민 연구원은 "핀테크 시대에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신 러닝의 활용 등 첨단기술의 도입에 대한 금융권의 적극적인 준비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고동욱 기자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