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적 전망에 소극적인 국책연구기관마저 국내 경제에 공식적으로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발표한 ‘3월 경제동향’을 통해 “최근 주요 지표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경고했다. KDI가 ‘경기 둔화’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작년 1월 이후 14개월 만이다. 한국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가 그만큼 짙어졌다는 지적이다.
[메아리 없는 "경제 살리자"] 암울해진 KDI 진단…"경기 둔화 뚜렷해 단기회복 어렵다"
“내수 개선 추세 약화”

KDI는 “(건설투자 등) 일부 지표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내수 전반의 개선 추세는 약화되고 있다”며 “세계 경제의 성장세 둔화로 수출이 큰 폭의 감소세를 지속함에 따라 광공업생산과 출하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KDI가 직접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은 이례적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한 우려가 높았던 지난해 7월에도 KDI는 “민간소비에 대한 메르스의 부정적 여파로 전반적인 성장세가 약화됐다”는 정도의 평가에 그쳤다.

1개월 전만 해도 KDI는 “최근 일부 지표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점차 둔화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조심스러운 관측을 내놨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소비 활성화 대책으로 민간소비가 완만한 개선 추세를 유지하고 있고 서비스업 생산도 비교적 양호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소비 등 내수가 양호한 흐름을 지속하고 생산·투자도 기저효과 등으로 다소 개선되고 있다”(그린북 2월호)는 ‘낙관적인’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달 만에 바뀐 경기 전망

최근 한 달 동안 생산, 소비, 투자 등 주요 지표는 모두 부진했다. 좀체 바뀌지 않는 KDI의 경기 전망이 갑자기 어두워진 이유다. 1월 산업생산은 대부분의 산업이 둔화하면서 전년 동월 대비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월 증가율(2.6%)보다 0.8%포인트 낮아졌다. 광공업생산은 1.9% 줄어들며 전월(-2.2%)에 이어 감소세를 지속했다. 자동차(-3.1%) 정보통신기술(-2.9%) 등 주요 업종이 모두 부진했던 탓이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지난해(76.2%)보다 큰 폭으로 떨어진 72.6%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72.5%)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1월 제조업 출하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3.9% 줄어들며 전월(-1.7%)보다 감소폭이 더 커졌다.

2월 수출은 전년 같은 달보다 12.2% 감소했다. 사상 최장기간인 1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KDI는 “광공업생산 및 출하가 주요 품목에서 감소한 가운데 재고율은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광공업생산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서비스업생산도 3.0% 늘어 전월(3.5%)보다 증가폭이 둔화됐다.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100)보다 낮은 98에 머물렀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앞으로 경제 상황에 대해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뜻이다.

KDI는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된 가장 큰 원인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한 대외여건’을 꼽았다. 미국 금리 인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 저유가 지속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는 분석이다.

KDI는 “중국의 수출과 수입(1월 기준)이 각각 두 자릿수 감소세를 나타내는 등 신흥국 부진이 이어지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여전히 높은 수준인 것도 큰 부담”이라고 진단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