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남(春男), 틀을 벗다
여자의 색으로 여겨지던 레드 컬러, 여성 핸드백에서나 보던 뱀가죽, 트레이닝복에 많이 쓰는 저지(jersey) 원단…. ‘신사’와는 썩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런 소재와 색상이 남성복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최근 내놓은 ‘봄·여름(S/S) 남성복 트렌드’에서 “남성복이 가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성과 요소를 접목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남성복의 전통적인 경계를 허무는 보더리스(borderless)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붉은 원숭이의 해인 병신년(丙申年)이기도 한 올해, 남성복 시장에서는 레드 컬러가 주목받고 있다. 타오르는 태양 같은 강렬한 레드부터 해 질 녘을 떠올리게 하는 선셋 오렌지, 레드 브라운 등이 포인트 컬러로 활용됐다. 슈트, 재킷, 바지에서부터 셔츠, 스카프, 반다나 같은 액세서리까지 레드 컬러가 다양하게 등장했다.

윤재원 빨질레리 디자인실장은 “레드를 밝은 베이지색이나 회색과 함께 매치해 포인트 컬러로 부각하거나 지오그래픽 프린트 셔츠, 솔리드 블레이저, 프린트 스카프 등을 활용해 세련되고 젊은 느낌을 강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재 측면에서는 리넨과 실크의 혼방이나 울 등으로 제작한 초경량 소재가 늘었다. 수년째 ‘남성복의 캐주얼화’ 현상이 이어지면서 공식적인 자리는 물론 캐주얼한 자리에서도 소화할 수 있는 옷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갤럭시는 200수(13.5마이크론) 울로 만들어 무게를 줄이고 착용감을 높인 ‘세번수 울 슈트’를 내놨고, 로가디스는 쉽게 구겨지거나 피부에 달라붙지 않도록 개선한 기능성 슈트를 늘렸다. 편안한 저지 소재가 남성의 재킷, 바지, 셔츠 등에 대거 도입됐고 여성의 핸드백이나 구두에 쓰이던 뱀피 소재의 재킷도 나왔다.

이현정 갤럭시 디자인실장은 “남성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화되면서 자신만을 위한 차별화된 상품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며 “전통적이지만 현대적 감성을 함께 갖춰 어떤 상황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했다.

과한 슬림 핏(slim fit) 대신 다소 편안하고 넉넉한 느낌의 옷이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몸에 자연스럽게 붙지만 코튼, 시어서커 등의 소재를 활용해 편안함을 살린 상품이 많이 선보였다. 정수강 엠비오 디자인실장은 “‘릴랙스 무드’ 트렌드에 따라 너무 날씬하게만 보이기보다 여유로운 실루엣의 슈트가 인기”라고 전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