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법정 지음/ 책읽는섬/ 192쪽/ 1만3000원
1967년 당시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된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百日法門)’이 이어질 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30대 중반의 법정 스님이었다. 법정이 던진 질문은 기독교에서 성직자가 “정말 천국이 있나요?”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인 질문이었다. 성철 스님은 화를 내는 대신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자꾸 깨친다, 깨친다 하는 것은 사람이 그런 깨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런 무진장한 대광맥, 금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진장의 대광맥이 사람 가슴속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생명선입니다.” 자기 자신이 이미 부처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성불이고 해탈이라는 의미였다.
《설전》은 근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자 대중의 스승이던 성철(1912~1993)과 법정(1932~2010)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백일법문’의 대화와 1982년 두 스님이 나눈 대담을 실었다.
정확히 20년 차이 나는 두 승려는 성향도 법통도 달랐지만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고, ‘가야산의 호랑이’라고 불릴 만큼 제자들에게 엄격했던 성철 스님은 유독 법정 스님을 인정하고 아꼈다.
성철 스님은 수많은 종교 중에서 불교만이 ‘영원한 진리’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만약 앞으로라도 불교 이상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면 당장 벗어버릴 겁니다. 나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책 속에는 “불교란 무엇입니까?” “3000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등 서른 후반이던 청년 법정의 불교에 대한 관심과 생각, 고민이 담긴 질문이 녹아 있다. 의지할 만한 종교인이 많지 않은 요즘, 떠나간 두 거인이 남긴 이야기는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