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64% '일반해고' 찬성
노조 "직원들 위해 투쟁보다 교섭 선택했다"
사측 "함부로 적용 안해…신입사원 뽑겠다"
금융사 성과주의 확산 기폭제될지 주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금융노조가 즉각 IBK투자증권 노조에 대해 ‘제명’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소속 지부에 비슷한 흐름이 퍼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IBK투자증권의 이번 결정은 노사합의라는 선례를 제공하는 데다 청년실업 해소 등을 위해 저성과자 해고를 허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노사합의 어떻게 나왔나
IBK투자증권 노사가 저성과자의 일반해고를 합의한 데는 단순히 해고 목적이 아니라 전 직원의 성과 향상이 목표라는 공감대가 바탕이 됐다. “연봉제만으로는 저성과자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용자 측과 “투쟁보다는 교섭이 노조원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노조 측의 고민이 합쳐진 결과다.
이 때문에 이번에 바뀐 취업규칙도 저성과자의 업무실적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따르면 일정 성과기준에 미달한 직원은 총 30개월의 단계별 ‘성과향상 프로그램’을 거치도록 돼있다. 1~2단계(총 24개월)에서는 기존 영업점에서 사내 연수, 금융투자협회 온라인 교육, 자격증 취득 교육 등을 이수해야 한다. 3단계(3개월)로 넘어간 직원은 별도팀으로 발령돼 영업전담 교육을 받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인사위원회 심의 뒤 3개월 대기발령을 거쳐 일반해고가 결정된다.
박창근 IBK투자증권 경영인프라본부장은 “급여 조정만으로는 저성과자를 독려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주변 직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며 “최악의 상황에는 해고할 수 있다는 뜻을 명문화한 것일 뿐, 직원들을 함부로 내보내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IBK투자증권의 이 같은 합의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노조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렸고 투표 범위를 놓고도 이견이 있었다. 결국 12월 초 시행된 전 직원 투표에서 553명 직원 중 355명(64%) 찬성으로 저성과자의 일반해고 내용을 포함한 취업규칙 변경안을 가결했다. IBK투자증권 노조는 직원 수의 절반이 안 돼 전 직원 투표로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노조 측은 강경 투쟁 대신 협상을 선택하면서 프라이빗뱅커(PB) 임금 향상, 선택적 복리후생제도 신설 등의 요구를 관철했다. 익명을 요구한 노조 관계자는 “무엇이 조합원을 위한 길인지 고민한 결과 투쟁보다는 교섭을 선택했다”며 “강경 투쟁을 요구한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이유”라고 말했다.
◆긴장하는 금융권 노조
지난해부터 영업점 실적이 크게 향상된 점도 직원들의 찬성표를 이끌었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고객자산관리(WM) 사업부가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전환했으며, 지난해 매출(5746억원)과 영업이익(399억원)은 전년 대비 39.33%, 125.42% 증가했다. IBK투자증권은 이에 힘입어 올해 3년 만에 신입 직원 채용도 재개하기로 했다. 1분기 중 15명을 신규 채용해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IBK투자증권의 이 같은 움직임이 다른 금융회사로 확산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미 지난 1일 산업은행 등 8개 금융 공공기관의 기능직과 평사원을 제외한 대리급 이상 1만1821명(전 직원의 68.1%)에 대해 성과 연봉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주요 금융사 노조들이 선선히 일반해고를 수용할지는 확실치 않다는 관측도 있다. NH투자증권의 이철헌 노조 부위원장은 “정부가 일반해고 지침을 발표한 상황인 만큼 사측에서 일반해고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내부적으로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계의 반발도 변수다. 민주노총 법률국장인 양현 노무사는 “IBK투자증권의 이번 결정은 저성과자에 대한 퇴출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금융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인 만큼 다른 업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