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와 선박을 리스(lease) 방식으로 장기간 빌려 쓰는 국내 항공·해운회사의 부채비율이 급증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현재는 자산을 빌리는 대가로 지급하는 리스료만 손익계산서에 반영하는 회계처리 방식이 허용되지만 2019년부터 해당 리스 자산과 부채를 모두 회계장부에 기재하도록 국제회계기준(IFRS)이 바뀌기 때문이다. 업황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로 고전 중인 국내 항공·해운사들의 경영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게 업계 우려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새 리스회계처리 기준서(IFRS 16)를 확정해 2019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생산·운용설비 리스 계약을 할 때 관련 자산과 부채를 모두 재무상태표(옛 대차대조표)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게 핵심이다. 지금은 리스 기간과 리스료, 계약 종료 뒤 소유권 이전 여부 등에 따라 리스료만 손익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한진해운 등 국내 항공·해운사들은 항공기와 선박을 빌려 쓰면서 해당 자산·부채의 상당 부분을 재무상태표에 잡아두지 않아 리스 부채가 2019년부터 갑자기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업체별로 부채비율이 지금보다 최대 400~500%포인트 급등하는 등 재무구조가 크게 나빠져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저비용항공사 타격 클 듯…부채비율 500%P 뛸 수도
IFRS 16(새 리스회계 처리 기준서)을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부채비율(부채/자기자본)을 낮추려고 자의적으로 회계처리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 IFRS를 적용받는 기업은 리스 계약을 맺으면 ‘금융리스’인지 ‘운용리스’인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회계처리를 하고 있다. 통상 리스 기간이 길고 리스료 총액이 리스물건의 시가에 근접할수록 금융리스로 분류한다.
기업들은 금융리스에 대해서는 항공기나 선박 등 리스물건을 자산과 부채로 재무상태표에 동시에 기록한다. ‘돈을 빌려 자산을 매입하는 거래’와 같이 회계처리를 하는 것이다. 반면 운용리스는 해당 회계연도에 지급한 리스료만 손익계산서에 비용으로 반영한다. ‘물건을 빌려 쓰고 사용료만 내는 거래’로 간주하고 회계처리를 하는 형태다.
국내외 학계와 회계업계는 “이런 ‘이중 회계처리 모델’은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해왔다. 같은 업종의 기업 두 곳이 같은 기계설비를 리스해 같은 제품을 생산해 팔더라도 리스 기간과 리스료 지급 규모 등 계약 조건을 다르게 하면 한 기업은 금융리스로, 다른 기업은 운용리스로 회계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IFRS 16이 시행되면 국내 항공사와 해운사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국내 항공·해운사는 수년간 지속된 업황 부진 탓에 실적이 좋지 않아 자기자본이 정체 또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리스부채가 급증하면 부채비율이 업체별로 많게는 400~500%포인트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항공사 중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 저비용항공사들이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운용리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서다. 신용평가업계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은 많게는 3조~4조원, 제주항공 등 저비용항공사들은 5000억원 안팎까지 리스부채를 반영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대한항공은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기를 금융리스로 빌려 쓰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해운사들은 ‘장기용선계약’ 중 운용리스 방식으로 빌린 선박들이 IFRS 16 적용에 따른 회계처리 변경 대상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선박 리스부채가 업체별로 수천억~1조원씩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앞으로 해운사들의 자본확충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